효행록(孝行錄)
집의공
한 은(執義公 韓 垽)
자는
중징(仲澄) 호는 만은(漫隱) 광해군 11년(기미:1619)
2월 14일생으로 집의를 지내고, 이조참의에
追贈되었으며, 문정공 계희의 6대손이고 병조참판
형길의 季子이다.
인조
22년(갑신:1644) 9월 28일부친인 병조참판
형길의 상을 당하여 예제(禮制)에 지나칠 정도로
집상하여 매일해시(亥時:밤10시)에 저녁 곡을
하고 축시(丑時:새벽2시)에 아침 곡을 하였으며,
장사전에는 죽을 먹고 졸곡 후는 거친 밥을
먹으며, 삼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며, 비바람이
불어도 조석으로 곡을 그치지 않고 너무 슬퍼하다가
몸을 상하여 결국 수척해지는 병에 걸렸다.
현종
즉위년(기해:1659) 6월 2일에 영상인 양파(陽坡)정태화공이
공을 효행이 뛰어나다고 천거하여, 선릉참봉을
제수하였으나 공은 어머님께 들어가 고하기를,
“천거한 조목이 사실과 같지 않아 감히 출사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고, 그 후 현종
6년(을사:1665) 1월 7일 모친인 정부인 연안이씨의
상을 당해서도 부친상 때와 같이 집상하여,
몸을 더욱 상하게 되었으며, 이후로는 벼슬에
더욱 뜻이 없이 오직 경전연구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중용(中庸)을 중히 여겨 몸소 실천하여
실제를 얻는 일에 힘썼다.
숙종원년
유일(遺逸)에 천거되어, 지평장령집의 시정
원정 부호군 등 수십 차례 소명을 받았으나,
오직 병을 핑계로 사직상소하고, 은일로 생을
마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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