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한
은(韓 垽)
자는
중징(仲澄) 호는 만은(漫隱) 광해11년-숙종14(기미:1619-무진1688)
집의를 지내고, 이조참의에 追贈되었으며,
문정공 한계희의 6대손, 삼등공 5대손이고
병조참판 형길의 季子이다.
공이6세
때<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고 있을 때 현곡정백창이 공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글제를 ‘항우’로 내고 운자를 불러주었더니,
공은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千古英雄楚覇王
천고의
영웅 초패왕(楚覇王).
拔山之力是誰當
산도
옮길 수 있는 그 힘 누가 당하랴
吳江風雨漢且及
오강의
거센 풍우 한나라에도 스쳤는데
百戰乾坤一夢場
수많은
그 싸움들 한 장면의 꿈이었어라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상과 같은 시를 보고 모두
감탄하였다.
관설헌(觀雪軒)
허후(許厚), 미수(眉?) 허목(許穆) 두 선생에서
수학하였으며, 두 분 선생은 모두 공이 큰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숙종
원년(을묘:1675) 2월 14일 남대:유일(南臺(遺逸):과거를
거치지 않았으나 학문과 도덕이 뛰어난 산림을
이조에서 대간에 천거된 사람)에 천거 되어,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다.
이옥
윤휴 등이 어전경연에서 아뢰기를 “전 지평
한은이, 그 재능과 문학이 뛰어나니 경연 장소에
출입토록 별유(別諭)하심이 보익하여 도움이
많을 것입니다.” 라 하고, 우의정 허목이
한은은 고서를 많이 읽고 학문의 재주가 있음을
신 또한 안다고 아뢰니, 임금이 한은이 있는
곳에 별유를 내려 “속히 올라와 경연자리에
출입하도록 함이 좋겠다.” 라고 하였다.
유명현,
이옥이 주강에서 아뢰기를 전 지평 한은과
전 지평 이동규를 같이 경연에 차례로 출입하기를
청하니, 주상이 이르기를 한은과 더불어 전부
경연에 출입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공은
지평에 2번 장령7번 집의2번의 소명을 받았고,
경신변국 후 영상 퇴우당(退憂堂) 김수흥의
천거로 집의를 연이여 6번을 받았다 김 상공이
공을 천거하면서, “전 장악원 정 한은 은
평소에 명성이 있어 여러 차례 천거 되었으나,
시골로 물러가 끝내 출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의론과 씩씩한 기상은 소인배가 흉내
낼 수 없으니 이와 같은 사람을 특별히 포장해
등용함으로써 말세의 타락한 풍속을 다스려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
외 별유로 장악원 정 부호군 등 여러 직을
수십 차례 소명을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출사하지 않았다.
주상의
돈면(敦勉)교지에, “너는 여러 번 불러도
사양하고 한 번도 올라오지 않으니, 나는 너무도
서운하다. 재변을 만나 몹시 걱정한 나머지
올바른 선비를 널리 구하고 있는데, 이때에
너는 한 결 같이 겸손한 태도로 사양하고 물러나니
섭섭하다. 속히 경석에 출입하여 나의 뜻에
부응하라.” 고 하였다,
숙종14년(무진:1688)
6월 1일 70세로 졸하시니 주상이 특별히 부의(別致賻)하였다,
숙종16년(경오:1690)에 우의정 김덕원(金德遠)이
경연자리에서 아뢰어 이조참의에 추증 되었는데
증직교지에, “과거공부를 폐지하고 정업(正業)을
닦아 행의(行義)를 드러내고 염퇴(恬退)를
하였으니, 가상히 여길 만 하므로 특별히 표증(表贈)하노라.”
라고 하였다.
유고로는
만은문집, 만은유고, 국립중앙도서관에 年譜만은집
원본 국역본이 소장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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