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윤공 한금강(判尹公 韓金剛 :?∼1433 11世)
판윤공(判尹公 : 金剛)은 안천부원군 경(安川府院君 卿)의 三男이요, 정승공 규인(政丞公 珪仁)의 손자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내고 세종(世宗) 15년(1433)에 졸했다.
배위(配位) 정부인(貞夫人) 남평 문씨(南平 文氏)와 합조(合兆)의 묘소(墓所)는 함주군 상조양면 신안리(咸州郡 上朝陽面 新安里) 山 3번지 내동(內洞) 신좌(辛坐)이다. 다음은 나라에서 내린 치제문(致祭文 : 致奠文)이다.
 
판윤공(휘 금강)치전문(判尹公(諱 金剛)致奠文)(世宗莊憲大王 十五年(檀紀 三七六六 · 西紀 一 四三三) 二月 十三日)
죽은 검 한성 한금강(檢 漢城 韓金剛)에게 치전(致奠)하다. 그 교서(敎書)에, “수명 (壽命)은 천부(天賦)에 말미암으니 진실로 사생(死生)을 벗어나기 어렵고, 은혜는 친한 이로부터 비롯하니 마땅히 처음에서 끝까지 변하지 아니해야 할 것이로다. 오직 경은 성품이 단정하고 성실하며 조행(操行)이 맑고 순수(純粹)하여 이미 국척(國戚)의 높음이 되었으나 영리(榮利)를 생각지 아니하고 시골에 물러가 살았었고, 태종조(太宗朝)에 있어서는 특별(特別) 관작(官爵)을 더하였다. 몸의 기운을 화하게 길러서 길이 큰 수복(壽福)을 누리기를 바랐더니 어찌하여 한 병이 문득 죽음에 이르게 하였는고. 부음(計音)이 이르매 진실로 측연(惻然)하도다. 작질(爵秩)을 추숭(追崇)하고 겸하여 부의(賻儀)를 내리며 관원을 보내어 치전하여 영혼(靈魂)을 위로하노라. 아아, 살아서는 은혜와 사랑을 두텁게 하였으니 죽어서는 마땅히 슬픔과 영화를 다할 것이므로 이에 교시(敎示)하노니 생각하건대 마땅히 알기를 다할 것이다”하다. (치전문 : 세종대왕께서 내린 공의 장례치를 때의 제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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