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공 한 형(掌令公 韓 형 : 1633~1689 21世)
公의 諱는 형(형)이요 字는 千一이니 성균진사(成均進士)하고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한 후기(後琦)의 아들이요 촉체(蜀體)로 글씨에 뛰어나 당대(當代)의 명필(名筆)로 성망(聲望)이 높았던 참봉(參奉) 철(哲)의 손자이다.
公은 사마시(司馬試)에서 생원진사(生員進士)에 합격했고 대과문과(大科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장영(掌令)을 역임(歷任)하고 숙종 기사(肅宗 己巳 : 1689)에 별세(別世)하니 수(壽)가 57세이다.
묘소(墓所)는 고양시 대자동 선영하(先塋下) 용복원 해좌(龍伏院 亥坐)이다.
公의 배위(配位) 밀양 박씨(密陽 朴氏)는 公보다 二年 上으로 壽 61하고 별세하니 公과 合폄으로 安葬하다. 슬하(膝下)에는 장남 세명(世嗚), 차남 세정(世貞), 세성(世成), 금화(錦화)이다.
掌令公이 사헌부 장영(司憲府掌令)으로 있을 때 시조부군(始祖府君)의 묘소(墓所)가 실호(失護)되어 타인(他人)이 모장(冒葬 : 몰래 장사함)한 사실(事實)을 관(官)에 제소(提訴)하여 결정적으로 봉심(奉審)하는 기쁨을 누렸으니 이는 한문(韓門)의 경사(慶事)였음을 헤아릴 수가 있는 것이고 더욱 시조의 유적(遺蹟)과 유물(遺物)을 영세(永世)토록 보전(保全)해야 한다는 정신교육(精神敎育)의 근원(根源)이었다. 이에는 참판(參判) 성우(聖佑)와 군수(郡守) 숙(塾)이 주역(主投)했음도 명찰(明察)해야 할 것이다.(때는 숙종 기사(關宗 己巳 :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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