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향록(철享錄)

 
문절공 한종유(文節公 韓宗愈 : 1287 ~ 1354 9世)
 公의 諱는 종유(宗愈)요, 자(字)는 사고(師古)이고, 호(號)는 복재(復齋)이다. 은청광록대부 밀직시 부사 상호군(銀靑光祿大夫 密直司 副使 上護軍)하고 치사(致仕) 한 영 (英)의 아들이요 검교태자 첨사(檢校太子 詹事)하고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추봉(追封) 된  원서(元壻)의 증손(曾孫)이다. 15세에 태학(太學)에 들어가서 탁월한 능력으로 진사(進士)를 거쳐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의 검열(檢閱)이되고 충숙왕(忠肅王)을 따라 元나라에 가서 행궁(行宮 : 임금의 거처)의 일력(日曆)을 기록 하였고 본국으로 와서는 춘추관 편수관(春秋館 編修館)에 진급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 하였으니 추성보절 찬화공신(推誠保節 贊化功臣) 삼중대광 도첨의 좌정승(三重大匡 都僉議 左政丞) 상호군(上護軍) 예문관 우문관(藝文館 右文館) 대제학(大提學)하고 한양부원군(漢陽府院君)에 봉군(封君) 되었으며 수(壽) 68세에 별세(別世) 하니 나라에서 문절(文節)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
   묘소(墓所)는 배위(配位) 경주 이씨(慶州 李氏)와 같이 경기도 장단군 대덕산(長湍郡 大德山) 선적사(禪寂寺) 남쪽 언덕으로 전해오는 바 출입(出入)이 불가능 하다. 公은 정사(政事)를 펴나갈 때 王의 그릇된 판단을 간(諫)하다가 듣지 아니하면 병(病)을 핑계로 며칠씩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公의 碑文은 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이 썼다.
 公은 벼슬길에 들어서 검열(檢閱)로부터 재상에 이르렀으며 항상 관리의 전형과 선발을 관장하여 친척과 친구들이 공의 힘에 힘입어 출세한 자가 많았다. 성품이 관후하고 무거워 일을 처리하고 사람 들을 접할 때는 모두 여유가 있었고 문장을 함에 있어서도 세속의 속기(俗氣)를 버리려고 힘썼으며 더욱 시에 힘을 기울였다.
 또 담소를 잘하여 술마시는 자리 같은 데 앉으면 유연히 화기가 흘러서 친애하는 마음이 나게 하였는데 복재(復齋)는 스스로 지은 별호였다. 처음에 이 문정공(李 文定公)이 태학에서 한번 보고는 드디어 그의 아들 가락군 휘 관(駕洛君 諱 琯)의 딸로 배필을 삼았다. 아들 셋을 낳았으니 백순ㆍ중명ㆍ계상(伯淳ㆍ仲明ㆍ季祥)이요, 딸은 여섯이다.
 공은 조선조 초기(朝鮮朝 初期)의 문신(文臣)으로 유명(有名)한 양촌(陽村) 권 근(權 近)의 외조부(外祖父)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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