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록(忠節錄)

 
부사공 한득신 (府使公 韓得信 : 宣祖20年(1587)∼仁祖17年(1639) 20世)
 공은 조선 중기(中期)의 문신으로 휘(諱)는 득신(得信)이다. 참봉공  의(參奉公 義) 의 아들이고 봉사공 거벽(奉事公 巨擘)의 손자이며 안양공 종손(安襄公 終孫)의 6대손이다. 어머니는 영인 전주 최씨(令人 全州 崔氏)로 중진(仲津)의 따님이다.
공은 선조(宣祖)20년(1587) 2월 14일에 청양군 대치면 농소리(靑陽郡 大峙面 農所里)에서 태어났다. 천품(天稟)으로 도량(度量)이 넓고 정의심(正義心)이 강하여 지조(志操)와 절개(節介)가 굳었다. 재지(才智)가 있어 성경현전(聖經賢傳)을 탐구하고 정자, 송자서(程子, 宋子書)에 밝았다.
 인조조(仁祖朝)에 무과급제(武科及第)하여 나중에 부사(府使)에 제수(除授) 되었으나 굳이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성리학(性理學)에 전심(專心)하여 후학(後學)에 힘썻다. 인조 병자호란(仁祖 丙子胡亂, 1636)이 일자 패배(敗北)가 계속 되고 대가(大駕)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播遷)하는 등 나라가 위태롭고 어수선할 때 의연(毅然)히 일어나 여러 의사(義士)들과 창의(倡義)하여 중직대부 건공장군(中直大夫 建功將軍)으로 수천명(數千名) 이 토적(討賊)할 때 공이 최선봉(最先鋒)으로 역전고투(力戰苦鬪)하였으나 적세(賊勢)가 왕성하여 끝까지 사투(死鬪)하다 수성(壽星)이 진영중(陣營中)에 떨어져 인조 17년(1639) 5월19일 창성(昌城)에서 순절(殉節) 하였으나 향년(享年) 53이었다. 이 전투(戰鬪)에서 순절한 공의 머리를 공의 말이 물고 본제(本第)에 돌아왔다. 비록 짐승이긴 하지만 의리(義理)로 주인에게 보은(報恩) 하였으니 어찌 장(壯)하다 아니하리오. 공묘(公墓)는 충청남도 청양 수석리 화치 광대곡 간좌원(靑陽 水石里 化峙 廣大谷 艮坐原)이다.
배위(配位) 숙인 용인 이씨(淑人 龍仁 李氏)는 생남(生男)의 따님으로 효종(孝宗) 7년 (1656) 6월 22일에 졸하니 청양군 대치면 시전리 자좌(靑陽郡 大峙面 枾田里 子坐) 에 초장(初葬) 한후 328년이 지난 이제 지령(地靈)이 좋지 않아 1984년 9월15일 공묘에 합조(合兆) 되었다. 묘표(墓表)는 1984년 가을 전주인 이선기 찬(全州人 李瑄基 撰)으로 세웠다, 공주 계룡산 동학사 숙청전 충신묘(公州 溪龍山 東鶴寺 肅淸殿 忠臣廟)에 향사(享祀)되었다. 공묘 백호하(白虎下)에 강절의마(剛節義馬)를 장(葬)하고 비석(碑石)을 세웠으며 마총(馬塚)에도 제사를 지낸다. 아들은 군수 후유(郡守 後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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