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행정려록(烈行旌閭錄)

 
유계공 한명석(柳溪公 韓命錫 : 孝宗 10年(1659)∼英祖 4年 (1728) 22世)
공(公)의 휘(諱)는 명석(命錫)이요 자(字)는 천뢰(天賚), 호(號)는 유계(柳溪)이다. 지지당 익세(知止堂 翼世)의 아들이고 증 승지공 시회(贈 承旨公 時晦)의 손자이며 문정공 계희(文靖公 繼禧)의 8대손이다. 어머니는 숙부인 재령 이씨(淑夫人 載寧 李氏)로 방현(邦鉉)의 따님이다. 공은 효종(孝宗) 10년(1659) 12월 22일 생이다.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고 충의(忠義)에 불타고 문학(文學)을 좋아하였다.
영조(英祖) 4년(1728) 정희량(鄭希亮. ?∼1728 草溪人. 代代로 安陰에서 살고 富者로 名門의 後孫인데 英祖 때의 叛亂者)들이 안의(安義, 慶南居昌)에서 무신(武臣)의 반란(叛亂)을 일으켰는데 공(公)은 때마침 어버이의 상중(喪中)에 있었음으로 의병(義兵)을 일으켜 반도(叛徒)를 없애지 못함을 통분하여 시(詩)를 지어 마음을 달랬는데 “노경주욕적개원순신(老驚主辱敵愾願殉身 : 늙은 臣下는 임금의 辱됨에 놀라 적개심에 불타는 마음 나라위해 죽기를 願하노라.)이라 하였다. 공(公)은 영조(英祖) 4년(1728) 11월 17일 70세로 졸하였다.
뒷날 조정(朝廷)에서 알고 충효(忠孝)로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배위(配位) 김해 허씨(金海 許氏)는 만(晩)의 따님이고 아들은 안락와 백기(安樂窩 伯琦)이다. 공의 배 김해 허씨(配 金海 許氏)는 영조(英祖) 26년(1750) 졸하니 이반성면 평촌리 서부곡 갑좌(二班城面 坪村里 西夫谷 甲坐)에 합조(合兆)하였는데 표석(表石)이 있다.
묘 : 柳溪公(韓 命 錫) 位置 : 慶尙南道 晋州市 二班 城面 坪村里 西夫谷 甲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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