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학장 한상동(學長 韓尙東 : 光武 5年(1901~1976))
목사 · 신학자. 경상남도 김해 출신. 어려서 한학을 하였고 1910년 다대포실용학교(多大浦實用學校)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운 다음 1916년에 졸업하였다. 1918년 같은 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1924년 전도인 박창근(朴昌根)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가문에서 추방되어 1927년 다대포를 떠나 진주광림학교(晋州光林學校)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28년 목회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피어선 기념성서학원에서 1년간 신학수업을 하고 나서 1933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하였다. 1938년 10월 24일 부산 초량교회(草梁敎會)에서 “현정부는 정의 및 신의에 위반한 우상인 신사참배를 강요하니 오등은 굴하지 말고 이것에 절대로 참배해서는 못쓴다.”라고 신사참배 반대설교를 하였는데, 이 때부터 경남교회의 신사불참배운동이 시작되었다.
1939년 1월 마산 문창교회로 전임하여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계속하던 중 마산경찰서의 압력으로 1939년 3월 교회를 떠나 무임(無任)목사가 되었다. 이후 이인재(李仁宰) · 주남선(朱南善) · 최상림(崔尙林) · 손명복(孫明復) · 최덕지(崔德支) 등 경남지역 목회자들과 함께 부산 · 마산 · 밀양 등지에서 신사참배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다가 1940년 7월 전국적으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자들이 검속당할 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출옥하여 이기선(李基善) 목사 등과 함께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교회재건을 위한 부흥회를 인도하기도 하였으나 공산당의 방해를 받자 1946년 월남하였다.
부산에 도착하여 이미 구상한 바 있는 신학교 설립에 착수하여 주남선·박윤선(朴允善) 등과 함께 1946년 6월 진해에서 신학강좌를 개최하였는데 이것이 오늘의 부산시 영도구(釜山市 影島區)의 고신대학(高神大學)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1946년 12월 48회 노회에서 일제치하 경남교구장을 지낸 김길창(金吉昌)목사가 노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노회는 고려신학교 학생 추천을 비롯한 고려신학교측 목회자들은 경남노회를 탈퇴하여 1951년 경남 법통노회를 조직하였고 1952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노회를 결성함으로써 세칭 고려파 예장총회가 조직되었다.
이후 1960년 12월 이른바 예장 합동측 장로교단이 형성되었을 때 총회장에 당선되기도 하였으나 고려신학교가 서울의 장로회총회신학교와 합동됨으로써 애초에 신학교를 설립할 때 표명한 신학 교육의 정신이 흐려질까 우려하여 1963년 홍반식 · 오병세 · 이근삼 등과 함께 고려신학교의 재건 및 교단환원운동을 주도하였다. 1969년 고려신학교 제9대 교장으로 취임하였고, 1970년 고려신학대학으로 승격되었을 당시 초대학장에 취임하였으며, 1974년 1월 은퇴하여 명예학장으로 추대되어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신학교 및 교단 발전에 진력하였다. 저서로는《주님의 사랑》과 설교집인《신앙세계와 천국》이 있다. 1976년에 졸하였다. 지금은 고신대학교(高神大學校)로 승격(昇格)되었다. 1997년 11월 한상동기념관(韓尙東記念館)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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