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공 한일(良靖公 韓 일 : ?~1433 11世)
公의 諱는 일(일 : 혹은 일으로 기록된 경우도 있음)이요, 호(號)는 유재(柔齋)이다. 안천부원군 경(安川府院君 卿)의 2男이요 정승공 규인(政丞公 珪仁)의 손자로 신의왕후(神懿王后)의 동생이다. 대광보국 숭록대부 우정승(大匡輔國 崇祿大夫 右政丞)하고 양정공(良靖公)이라 시호(諡號)를 받았다. 배위(配位)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최씨(崔氏)이고 묘소(墓所)는 함주군 기곡면 장동리(咸州郡 岐谷面 長洞里) 山 36번지 간좌(艮坐)이다. (兩位, 合兆) 다음은 조선 세종실록(朝鮮 世宗實錄)을 옮겨 실은 것이다.
 
영돈영부사우의정시양정한공(휘 일)유사(領敦寧府事右議政諡良靖韓公(諱 일)遺事)
세종대왕실록(世宗大王實錄)에 의(依)하면 세종장헌대왕 15년(단기 3766 · 서기 1433)(世宗莊憲大王 十五年 檀紀 三七六六 · 西紀 一四三三) 三月 六日 영돈녕부사 한 일(領敦寧府事 韓 일)이 졸(卒)하다. 일(일)은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제(弟)이다. 지략(智略)과 무예(武藝)가 있어서 태조(太祖)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에 매양 행군(行軍)을 할 때는 항상 휘하(麾下)에 있었고, 태조(太祖)가 즉위(卽位)하자 원종공신 철권(原從功臣 鐵券)을 하사(下賜)하였다. 공(公)이 졸(卒)함에 세종대왕(世宗大王)은 3일간 철조(三日間 輟朝)하고 치제(致弔)하며 별부(別賻)로 쌀과 콩 40石과 종이 100권(百券)을 하사(下賜)하고 시호(諡號)를 양정(良靖)이라 하였는데 온량(溫良)하고 즐거워함이 良이요 몸을 공손히 하고 말이 적음이 靖이다.
 
양정공(良靖公 : 일)이 별세(別世)하여 세종임금이 내린 치제문(致祭文)
양정공(한 일)치제문(세종장헌대왕 15년(단기 3766 · 서기 1433) 3월 24일)(良靖公 (韓 일)致祭文(世宗莊憲大王 十五年(檀紀 三七六六 · 西紀一四三三) 三月 二十四日))
죽은 영돈녕부사 한 일(領敦寧府事 韓 일)에게 사제(賜祭)하다. 그 교서에 이르기를, “죽고 삶에 명(命)이 있으니 이수(理數)의 떳떳함을 피하기 어렵고 은혜(恩惠)와 예(禮)는 정(情)에서 인연하였으니 마땅히 슬프고 영화롭게 하는 은전을 극진히 할 것이다. 오직 경은 자품이 질박하고 곧으며 행실이 순진(純眞)하여 속적(屬籍)한 높은 신분(身分)으로서 척리(戚里 : 나라의 친척)의 의표(儀表)가 되었다. 소고(昭考)께서 대우하는 예가 돈독하시어 항상 높은 벼슬을 내리셨고 과인은 화목하는 정이 깊어서 돈녕부(敦寧府)의 長을 삼았다. 이로 인해 치사(致仕)하게 하여 높은 향수(享壽)를 바랐더니 하늘이 버리시여 문득 슬픔을 주었도다. 이미 절혜(節惠)로서 시호(諡號)를 정하게 하고, 박전(薄奠)을 베풀어 슬픔을 펴게 하노라. 아아, 좋은 일과 슬픈 일에 마음을 같이 하였으니 어찌 옛 정을 잊을 것이며 유명(幽明)이 이치가 같으니 나의 회포를 알아 몸받을 지어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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