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공 한언공(貞信公 韓彦恭 : 太祖 23年(940)~穆宗 7年(1004) 3世)
고려 광종(光宗), 성종(成宗), 목종(穆宗) 때의 문신으로 광록시소경(光祿寺少卿) 총례(聰禮)의 아들이다.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광종(光宗) 때 15세로 광문원(光文院)의 서생(書生)이 되었고, 뒤이어 승사랑(承事郞)이 되었다가 내승지(內承旨)를 거쳐 내의승지사인(內議承丞旨舍人)에 올랐다. 성종 3년(984) 형관시랑이 되었고, 이어 병관시랑에 올랐다.
990년 송나라에 사은사(謝恩使)로 갔다가 금자광록대부 검교병부상서 겸 어사대부(金紫光祿大夫 檢校兵部尙書 兼 御史大夫)를 제수받고 대장경 481함(函) 2,500권과 송태종이 지어 비장한 <전소요연화심륜(詮逍遙蓮花心輪)>을 가지고 돌아왔다. 어사 예관시랑판 예빈성사(御史 禮官侍郞判 禮賓省事)가 되어 송나라의 제도를 본떠 중추원(中樞院)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실현되자 그 부사(副使)를 거쳐 중추원사가 되었다.
전중감(殿中監), 지예관사(知禮官事)를 거쳐 참지정사 상주국(參知政事 上柱國)이 되었다. 목종(穆宗)이 즉위하면서 내사시랑 평장사(內史侍郞 平章事)에 제수되었고, 목종 14년(1001)에 문하시중에 올랐다.
그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목종은 본관인 장단을 단주(湍州)로 승격시키기도 하였다. 다시 전폐(錢幣)를 쓰고 추포(추布 : 발이 굵고 거친 벼)를 금하여 백성들의 불편 이 커지자 그 폐단을 상소하여 전폐를 다주(茶酒)나 식미(食味) 등의 점포에서만 사용 하게 하고, 그밖의 교역에서는 토산물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뒤 개국후감수국사(開國侯監修國史)가 되었으며 죽은 뒤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다. 현종 18년(1027)에 목종(穆宗) 묘정(廟廷)에 배향되었고, 덕종 2년(1033)에 다시 태부(太傅)가 증직되었다. 시호는 정신(貞信)이다. 아들은 지 서경유수(知 西京留守)이며 정종 국구(靖宗 國勇)인 조(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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