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군계(西原君系)

 
장간공 한치례(莊簡公 韓致禮 : 세종 23년(1441)~연산군 5년(1499) 14世)
 조선 초기의 문신이요 무신으로 자는 자절(子節), 양절공(襄節公 : 確)의 셋째 아들로 군사공(郡事公 : 永정) 증 영의정의 손자이며 어머니 남양부부인 홍씨는 대제학 문양공 여방(文良公 : 汝方)의 따님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도정, 병조참지 첨지중추부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성종 2년(1471) 순성좌리공신에 녹훈되며 서릉군(西陵君)에 봉해졌다. 동왕 4년 병조참판을 배임하고 동왕 8년 사은사로, 2년후에는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동왕 11년 이조판서에 오르고 이듬 해 좌참찬이 되었다.
 동왕 16년 판중추부사, 그 뒤 호조, 병조, 공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연산군 (燕山君) 1년(1495) 도총관, 동 5년 영돈녕부사로서 서릉부원군(西陵府院君)에 진봉 (進封)되었다.
 공은 풍채(風采 : 인품)가 장려(壯麗 : 장대하고 화려함)하고 처신범절(處身凡節 : 몸을 가지는 일과 모든 일)이 단아(端雅 : 단정하고 아담함)하여 관복(官服)을 갖추고 조정(朝廷)에 오르면 그 고상(高尙 : 거룩한)한 인품이 진선(眞仙 : 도교의 깊은 진리 를 깨달은 사람)을 대한 것 같이 우러러 보였다고 한다.
 일찍부터 문무(文武)를 통하여 내외요직(內外要職)을 두루 역임하며 오직 충성과 근고(勤苦 : 애를 써가며 부지런히 일함)로서 지력(智力 : 슬기의 힘)을 다하여 봉공(奉公 : 나라를 위하여 진력함) 40여년에 그 공명(功名)이 능연각(凌煙閣 : 당태종이 공신 24인의 얼굴을 그려 걸어두었던 높은 집. 여기에서는 나라에 공로가 많은 신하를 표창하는 집으로 쓰임)에 오르고 위계(位階 : 벼슬의 등급)가 일품(一品)에 이르렀다.
 향년 59세에 졸하니 시호는 장간(莊簡)이다.
 배위는 정경부인 죽산 안씨(竹山 安氏)니 연창위 양효공 맹담(延昌尉 良孝公 : 孟聃)의 따님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생하니 남은 서성군 익(西城君 : 翊)으로 증 병조참판이다.
 
 位置 : 서울 道峰區 放鶴洞
 歲享日 : 陰 10月 3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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