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행정려록(烈行旌閭錄)

 
열부 진주 유씨(烈婦 晋州 柳氏 1903∼l994)
부인은 근세(近世)에 보기드문 효부(孝婦)이며 열부(烈婦)이다. 충경공 형(忠景公 : 珩)의 후손으로 익호(翼湖)의 따님이다. 정수(楨洙)의 아내요 송암공(松菴公 : 元錫)의 자부(子婦)로 17살 때 한문에 시집왔다. 6대 종부(宗婦)로 선조사(先祖祀)와 구고(舅姑 :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봉양에 지성을 다하였고 시가 동기간에 우애(友愛)가 돈독(敦篤)하며 행복하게 지내던 중 시아버지가 지병(持病)으로 장기간 병석에 눕자 이를 간병하던 남편도 과로로 병을 얻으니 집안은 매우 곤궁에 처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두 분 환자에게 좋다는 약은 다 구하여 가료하며 쾌차(快差)하기를 조석으로 기도하는 등 백방으로 정성을 다 하였으나 그 보람도 없이 1944년 시아버지가 별세하고 이어서 같은 해 5월 21일에 남편도 작고하여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氣絶)까지 하였다. 그렇게 되니 부인은 가장으로서 노령의 시어머니 봉양과 두 시동생, 아들 3형제를 양육(養育)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 일과 같이 슬퍼하고 동정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이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제례에 따라 상기를 마친 후에도 소복(素服)을 하고 청정(淸貞 : 마음이 깨끗하고 곧음)수절(守節 : 절개를 지킴)하며 근검(動檢 :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함)하니 조상의 보살피심인지 치산(治産 : 생업을 다스려 살림을 늘림)하여 빈곤(貧困)하던 가정을 일으키고 남편 생존시보다도 더욱 지성으로 선조사와 시어머니 봉양에 힘썼으며 시동생과 아들을 훌륭히 양육 성장(成長)시켰다. 유림에서 이를 알고 포상하여 1983년 열녀비를 세웠다. 아들은 상기(相奇), 상준(相俊), 상필(相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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