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록(倡義錄 : 義士)

 
지사 한태석(志士 韓泰錫 : 고종 17년(1880) ∼ ?)
공은 왜정 때 독립운동가. 자는 학초(學初), 여진공 성교(汝鎭公 : 省敎)의 아들로 감사공 배주(監司公 配周)의 7대손이고 충정공 응인(忠靖公 應寅)의 11대손이며 어머니 창녕성씨(昌寧 成氏)는 신호(薪鎬)의 따님이다. 충청남도 청양 출생으로 향리에서 서당교육을 받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충격을 받고 홍성의 민종식(閔宗植)의병대에 합류하여 항일투쟁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그뒤 독자적으로 충청남도 홍산(鴻山) 지치(支峙)마을에서 청년 수십명을 모아 기병(起兵)하여 이웃인 구병(九兵) · 문장(文章) · 서천(舒ll|) 등지와 홍주성 교전시까지 항일투쟁을 계속하였으며 1906년 5월에는 서산 · 해미 · 예산 · 대천 · 광천 등지에서 청년을 모아 의병대에 합류시켰다.
그러나 왜병에 발각되어 붙잡힐 뻔하였으나 동지들과 함께 변장하여 탈출하므로써 위기를 모면하였다. 1916년 비밀결사광복회를 조직할 때 재정적으로 지원하였으며 1920년 사이토(齊藤實) 총독과 정무총감(政務總監)등을 저격, 사살하기 위하여 동지 10여명과 함께 계획을 치밀히 짰으나 무기를 전달하기 위하여 귀국한 임시정부요원 한우석 (韓禹錫 : 공의동생임)이 붙잡힘에 따라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1929년 충청남도 대덕군 기성면의 부호 정순학(鄭淳學)에게 군자금을 요청, 그로부터 200원을 받아 가지고 나오다가 잠복중이던 일본 형사에게 붙잡혀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배위는 동래 정씨(東來 鄭氏)니 진사 익모(翼模)의 따님이다. 슬하에 아들 인수(寅洙)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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