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헌공 한명욱(栗軒公 韓明勖 : 명종(明宗) 22년(1567)~효종(孝宗) 3년(1652) 19세)
공(公)은 조선 중기(朝鮮 中期)의 문신(文臣)이다. 휘(諱)는 명욱(明勖)이요, 자(字)는 욱재(勖哉), 호는 율헌(栗軒)이다.
도곡공 술(陶谷公 述)의 아들이고 청연공 지원(靑蓮公 智源)의 손자로 문정공 계희(文靖公 繼禧)의 5대손 자이다.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전주 이씨(贈 貞敬夫人 全州 李氏)로 감찰 운(監察 韻)의 따님이다.
공은 명종 22년(1567) 생으로 선조(宣祖) 39년(1606)에 진사(進士)가 되고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하여 충의위사과(忠義衛司果) 호조좌랑(戶曹佐郞)을 거쳐 현감(縣監)이 되고 광해군(光海君) 4년(1612)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614년 예조좌랑(禮曹佐郞)이 되었고 이듬해 사서 정언(正言)을 거쳐 지평(持平)이 되었다. 이 때 소북파(小北派)의 영수(領袖) 남이공(南以恭)을 탄핵(彈劾)하여 파직(罷職)되어 평산(平山)으로 유배(流配)되었다. 후에 장령(掌令) 군기시정(軍器寺正)을 역임(歷任)한 뒤 1618년 군자감정 봉상시정을 거쳐 이듬해 양서어사(兩西御使)로 파견(派遣)되었다.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대북파(大北派)가 실각(失脚)하매 관직(官職)에서 물러나 있다가 다시 기용(起用)되어 인조 8년(1630) 동지사(冬至使) 겸(兼) 성절사(聖節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인조 20년에 호군(護軍)이 되었고 그 뒤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고 1646년 병술(丙戌)에 기노사(耆老社)에 시입(始入)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끝으로 낙향(落鄕)하여, 호(號)를 율헌(栗軒)으로 하고 광주 율리(廣州 栗里) 선영(先塋)에 한거(寒居)하다가 1650년 청연(淸蓮), 도곡(陶谷), 태항(苔巷), 三夫子(삼부자)분의 시문(詩文)을 모아  《삼체집 三體集》을 간행(刊行)하였다.  《삼체집 三體集》은 영의정(領議政) 김상헌(金尙憲)과 대제학(大堤學) 이민구(李敏求)가 서문(序文)을 썼다. 정송강(鄭松江), 성우계(成牛溪) 양선생(兩先生)으로부터 수학(受學)을 하였다.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장의(掌議) 때 장계곡(長溪谷)과 더불어 우계, 율곡(牛溪 栗谷)의 재차(再次) 무고(誣告)를 천하명문(川下名文)으로 소변(疎辯)한 상소문(上疏文)은 사림(士林)에 유명(有名)하다. 효종 3년(1652)에 86세를 일기로 졸(卒)하니 묘갈(墓碣)을 자찬(自撰)하였으며, 배위(配位) 정부인 고령 박씨(貞夫人 高靈 朴氏)는 증 판서 양(贈 判書 梁)의 따님이고, 정부인 동래 정씨(貞夫人 東萊 鄭氏)는 좌랑 상의(佐郞 象義)의 따님이다. 아들은 감역 항(監役 亢)과 상(商), 방(旁), 장(章)이다.
공은 배 정부인 고령 박씨(貞夫人 高靈 朴氏), 배 정부인 동래 정씨(貞夫人 東萊 鄭氏)와 함께 고 도곡공 묘전 자좌 품자(考 陶谷公 墓前 子坐 品字) 삼조(三兆)이다.
전향(前向)에서 제일 위의 묘가 공묘(公墓)이고 좌측(左側)이 배 정부인 고령 박씨(配 貞夫人 高靈 朴氏)묘이며 우측(右側)이 배 정부인 동래 정씨(配 貞夫人 東萊 鄭氏)의 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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