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공 한제(判事公 韓齊 : 忠正 元年(1349)~太祖 7年(1398) 11世)
고려 말의 문신으로 휘(諱)는 제(齊)이고 호(號)는 춘당(春塘)이다. 평간공(平簡公) 공의(公義)의 셋째 아들이고 충혜왕묘(忠惠王廟) 배향공신(配享功臣) 삼중대광도첨의 우정승(三重大匡都僉議 右政丞) 사숙공 악(思肅公 渥)의 손자이다. 공은 천품(天稟)이 이범(異凡)하여 관후(寬厚)하고 묵중(默重)하여 효우(孝友)하고 자인(慈仁)하여 기환(綺紈 : 富貴) 자제(子弟)로서 성장하였다.
공은 백씨(伯氏) 수(脩)와 중씨(仲氏) 리(理)의 교양(敎養)에 힘입어 우왕조 초(禑王朝 初)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각부 요직(要職)을 역임하면서 충근선력(忠勤宣力)함은 근우(近手) 20성상(星霜)에 호부판사(戶部判事)에 승진(昇進)되었으나 여말(麗末)의 역성혁명(易姓革命)은 응천명(應天命)하고 순민심(順民心)하는 자연의 귀취(歸趣)임을 달관(達觀)하고 묵묵히 전원(田園)에 은둔(隱遁)하여 영적(影跡)을 감추고 오직 구주(舊主)를 향한 충절(忠節)을 고수(固守)하다 조선조(朝鮮朝)를 맞게 되었으나 조선 태조(太祖) 7년(1398)에 졸하였다.
배위(配位) 현부인 남양 홍씨(縣夫人 南陽 洪氏)는 부윤 유구(府尹 有龜)의 따님이며 아들은 중랑장 승양(中郞將 承讓) 그리고 승홍(承洪)이다.
공은 서곡 선영하(瑞谷 先塋下)에 배위 현부인 남양 홍씨(配位 縣夫人 南陽 洪氏)와 합조(合兆)이다. 공이 연관(捐館)한 지 594년에 묘안(墓顔)에 현각(縣刻)이 상궐(尙闕)되었음을 통탄한 후손(後孫)들이 1992년 족후손(族後孫) 상대 찬(相大 撰)으로 여섯자(尺) 크기의 묘비(墓碑)를 청명일(淸明日)에 세웠다.
 
位置 : 京畿道 坡州市 津東面 瑞谷里 細谷 歲享日 : 淸明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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