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윤공 한성근(判尹公 韓聖根 : 純祖 33年(1833)~光武 9年(1905) 29世)
公의 휘(諱)는 성근(聖根)이고, 자(字)는 원집(元執)이며, 증 호판공 용철(贈 戶判公 用喆)의 아들이고, 증 가선호참공 영표(贈 嘉善戶參公 永彪)의 손자이며, 양이공 서구(襄夷公 瑞龜)의 16대손이다. 순조(純祖) 33년(1833) 8월 3일생이고 철종(哲宗) 14년(1863)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兵寅洋擾) 때 순무영(巡撫營)의 초관(哨官)으로 집사(執事) 지홍관(池弘寬)과 함께 문수산성(文殊山城)을 지키다 프랑스함대에서 상륙한 대부대를 산성 남문에서 격파하였으나 결국 병력이 부족하여 패(敗)하고 말았다.
그 뒤 같은 해 봉상시 봉사(奉常寺 奉事), 병조좌랑(兵曹佐郞), 은산현감(穩山縣監), 지평(持平), 좌승지(左承旨) 통진부사(通津府事),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使)를 지냈으며 고종 18년(1881) 별기군(別技軍)이 창설되자 정령관(正領官)으로 좌부령관(左副領官)인 윤웅렬(尹雄烈)과 같이 신식훈련에 힘썼다. 같은 해 안기영(安驥永) 등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자(庶子) 이재선(李載先)을 왕으로 추대하려던 사건에 연루되어 윤웅렬 등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그 뒤 병조참판(兵曹參判)을 거쳐 동왕 30년(1893)에 한성판윤(漢城判尹), 1896년에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1899년에 궁내부 특진관(宮內府 特進官)을 역임하였다
광무(光武) 9년(1905) 12월 28일에 졸하였다.
배위(配位) 정부인 밀양 박씨(貞夫人 密陽 朴氏)는 해일(海一)의 따님이고 아들은 감찰 정렬(監察 鼎烈) 주사 응렬(主事 應烈), 등제 창렬(登第 昌烈), 참봉 영렬(參奉 永烈)과 무렬(武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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