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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한상훈
ㆍ작성일 2018-02-21 (수)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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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몽골은 한국과 4촌 .. 고구려 첫 도읍도 몽골에 있었다"


중앙일보  

"몽골은 한국과 4촌 .. 고구려 첫 도읍도 몽골에 있었다"

허귀식 입력 2012.10.20. 00:06 수정 2012.10.20. 11:18

http://v.media.daum.net/v/20121020000608487

최기호 울란바타르대학 총장





최기호 울란바타르대학 총장(오른쪽)이 지난 6일 대학 체육관서 종이문화재단과 함께 개최한 '세계평화 기원 종이비행기 날리기' 행사서 몽골 어린이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고 있다. [사진 종이문화재단]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성산인 자이슨 자락. 현지인의 존경을 받는 한 한국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이다. 몽골에서 신의(神醫)로 불렸던 의사 이태준(1883~1921)을 기리는 곳이다. 이태준은 1911년 세브란스의학전문(연세대의 전신) 제2회 졸업생 여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재학 시절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리고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김규식 박사의 권유로 1914년 몽골로 들어갔다. 그는 몽골 환자들을 치료하며 독립운동을 돕는다. 그러던 중 1921년 몽골을 삼키려던 일본군과 손잡은 백러시아군에 체포돼 38세로 자이슨 자락에서 생애를 마친다.

 묻혀 있던 이태준 열사의 존재를 찾아내고 이런 기념공원을 만든 주역 중 한 명이 최기호(70) 울란바타르대학 총장이다. 최 총장은 "오지의 병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이라며 "동시대에 활약한 성자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의인"이라고 말했다. 이태준의 별명이 '몽골의 슈바이처'다. 최 총장은 "몽골의 비밀 기록을 확인해 그의 존재와 활약상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몽골 정부가 제공한 땅에 연세대가 비용을 대 2000년 7월 묘비 제막식을 했다. 당시 기념공원 일대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도시의 팽창과 함께 노른자위 땅이 됐다. 한때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가 몽골 당국에서 나왔다. 최 총장은 "도시에는 공원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더니 더 이상 그런 말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남한에서 약 2000㎞ 떨어진 몽골. 하지만 거리보다 더 멀게 느껴졌던 나라다. 냉전과 남북 분단 때문이다. 남한 땅은 섬 모양을 하고 있다. 북으로는 갈 수 없고 동·서·남 3면의 바다를 통해서만 외부와 교류하는 나라가 됐다. 최 총장에게도 몽골은 먼 땅이었다. 그는 "90년 몽골에 처음 갔을 때 홍콩과 베이징을 경유해 3일 넘게 걸렸다"며 "중국 항공사의 비행기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최 총장이 몽골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한국어와 만주어·몽골어·일본어 등 주변 언어 간 관계를 연구하면서다. 30년 전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몽골학과를 수료했다. 하지만 냉전의 벽은 적성국가 몽골을 가볼 수 없는 땅으로 만들었다. 길이 뚫린 것은 한·몽 수교가 이뤄진 90년이다. 지금은 직항로가 열리고 4만여 명의 몽골인이 한국에 살고 있다. 한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몽골인만 2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인구(약 300만 명)의 10% 가까운 몽골인이 한국 생활을 체험했다는 말이 된다.



최기호 울란바타르대학 총장은 "한국과 몽골은 언어·인류학 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학문적으로 몽골과 고려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왔다. 고려시대 '청산별곡'에서 그는 몽골의 흔적을 읽는다.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동원한 고려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상태를 고려인 원감국사(圓監國師)가 표현한 작품이란 주장이다. 특히 후렴구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를 몽골어로 해석해 보여줬다. 그 뜻은 '이기자 이기자 이긴다 이기리라 이겨'다.

 우리말에는 많은 몽골어 잔재가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부산의 자갈치 시장. 과거 이 곳이 자갈밭이어서 그렇게 불린다는 설도 있지만 최 총장의 해석은 다르다. 물고기를 뜻하는 몽골어 '자가스'에 직업을 뜻하는 몽골어 '치'가 합성된 단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갈치 시장은 '물고기를 파는(잡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쯤 된다. 최 총장은 '한참을 가다'는 말의 어원도 몽골의 역참제도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몽골제국이 정비한 역참제도에서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약 40㎞)가 '한 참'이다. 이게 먼 거리여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변했다.

 몽골이 말을 키웠던 제주도의 지명에서 몽골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제주도는 1273년 삼별초가 평정된 뒤 몽골 관부가 설치된 곳이다. 1276년 8월 몽골 말 160마리를 제주도로 가져와 수산평(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방목했다. 제주도의 '조랑말' 명칭은 상하의 진동 없이 매끄럽게 달리는 '조로모로' 주법이란 몽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몽골학회 박원길 회장에 의하면 몽골인들은 말에게 가장 치명적인 설사병 치료제로 몽골 초원에서 지천으로 자라는 약용식물도 가져왔다. 수산평 근처에서 자라는 피뿌리풀이다.

 최 총장은 "제주도 지명에 많은 '오름'은 몽골어로 '산'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산굼부리' 역시 '가운데가 아름답게 깊이 파인 비탈산'이라는 몽골어에 유래했다고 본다. '비바리'는 '작다(비)'와 '며느리(바리)'가 결합한 몽골어다. 제주도에서는 이 말이 처녀를 뜻한다. 한라산도 몽골어로는 '큰 호수가 있는 산'쯤으로 풀이된다.

 최 총장은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 "고구려의 첫 도읍이 동(東)몽골 땅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실마리는 올해로 서거한 지 1600년이 된 광개토대왕의 비. 중국 지린성 지안현 퉁거우의 광개토대왕비는 아들 장수왕이 대왕 서거 2년 뒤인 414년에 세웠다. 비문의 첫 머리는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시조 추모왕(동명성왕)의 행적으로 시작한다. 연구 초점은 바로 추모왕이다. 12세기 중엽 편찬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주몽(朱蒙)'과 같은 인물이다. 13세기 말의 삼국유사에서도 추모왕은 주몽으로 기록돼 있다. 중국의 역사책에는 주몽·추몽·중모·도모 등으로 다양하게 나온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최 총장은 고구려인이 직접 기록한 '추모'가 당연히 가장 정확하고, 나머지는 이를 다른 한자로 옮긴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추모'는 무슨 뜻인가. 최 총장은 추모왕의 시호가 동명성왕인 데 착안해 '샛별(동명성·금성)'이란 뜻의 몽골계 단어인 '촐몽'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본다.

 최 총장이 다음으로 주목하는 것은 추모왕이 남하하는 길에 부여의 '엄리대수(奄利大水)'를 지나게 됐다는 비문 대목이다. 추모왕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부여의 대소로부터 도망쳐 후일을 도모하라는 어머니 유화 부인의 명을 따른다. 엄리대수는 삼국사기에서 '엄사수', 삼국유사에선 '엄수(淹水)'다. 최 총장은 '엄리'가 강 이름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의 어근이고, '대수'가 '큰 강물'이란 뜻이므로 엄니는 '아무르(아무+르)'라는 강 이름이라고 풀이한다.

 광개토대왕비는 추모왕이 엄리대수를 건넌 뒤 비류곡 홀본(忽本)에 도읍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37년의 일이다. 중국사서인 위서는 홀본이 아니라 '홀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기록했다. 사서들은 비류곡을 '모둔곡(毛屯谷)'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지형으로 묘사했다. 몽골어나 여진어로 '모드'가 '나무'이므로 모둔곡은 바로 '나무가 많은 골짜기'를 의미한다는 것이 최 총장의 주장이다. 동몽골 부이르노르 할힌골에는 끝없는 초원이 끝나는 지점에 높은 산이 있다. 최 총장은 이 할힌골이 홀승골이라고 본다. 그는 92년부터 수차례 할힌골 부이르노르와 다리강가 일대를 답사했다. 한국의 시골 주거지역에서 자라는 비름나물을 비롯해 초원에서 보기 어려운 풀들이 자라고 있는 지역이었다. 조개묻이 세 곳도 골짜기에서 발견됐다. 유목민이 먹지 않는 조개를 잡아먹는 사람들의 흔적이다. 성터나 석인상도 확인됐다. 또 몽골 여인과 고구려 여인이 초원에서 만나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는 전승설화가 채취됐다. 최 총장이 펴는 주장에 이론이 없을 수 없다. 초기 고구려의 위치를 놓고 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는 고구려가 동몽골 땅에서 나라를 열었고, 지금도 언어·인류학적으로 몽골이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라고 확신한다. 그는 "일본이 한국과 8촌쯤 된다면 몽골은 4촌뻘"이라고 말했다.

 그가 2년 전부터 총장을 맡고 있는 울란바타르대학에는 몽골인 35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지난 8월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한국어과도 설치돼 있다. 학생들은 몽골어와 어순이 같은 한국어를 비교적 쉽게 익힌다고 한다. 최 총장은 "한·몽 교류와 협력, 몽골의 발전에 이바지할 몽골 청년들을 키운다는 보람으로 즐겁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몽고 vs 몽골=몽고(蒙古)와 몽골(Mongol)은 한국인에게는 그게 그거 같다. 하지만 몽골인에게 몽고는 치욕의 단어다. 중국인이 몽골을 비하해 붙인 나라 이름이기 때문이다. 글자대로 풀면 '몽매하고 고루하다'는 뜻이다. 지금도 이런 의미 차이를 모르는 많은 한국인이 몽골과 몽골인을 몽고와 몽고인으로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네이멍구(내몽고)'처럼 여전히 몽골을 몽고로 부른다. 고려는 몽골 치하에서 독자적인 왕국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제국의 간섭은 많았으되 외형상 독립국의 지위는 잃지 않았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과 이를 잇는 대한제국의 말로와는 대조를 이룬다.

허귀식 기자 ksl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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