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始祖) 태위(위양)공(太尉(威襄)公)께서 청주 방정리(淸州 方井里)에 사셨으므로 그 후 자손(子孫)들이 마침내 청주로 본관(本貫)을 삼으니 혹은 상당(上黨) 또는 서원(西原)이라 함은 청주의 구지명(舊地名)인 것이다. 선대(先代)로 부터 한씨(韓氏)는 단일본(單一本)이었다고 전(傳)하여 왔는데 근세(近世)에 이르러서

(1) 예빈윤 연(禮賓尹 連)을 비조(鼻祖:元祖 또는 始祖라고 하나 우리 문중으로서는 파조(派祖)로 해석함이 옳다고 본다) 안변 한씨(安邊 韓氏)

(2) 평산백(平山伯) 후저(侯抵)를 비조로 하는 평산 한씨(平山 韓氏)

(3) 평장사(平章事) 자희(自憙 : 浚)를 비조로 하는 면천(沔川 ; 唐津) 한씨(韓氏)

(4) 시랑(侍郞) 언공(彦恭)을 비조로 하는 장단 한씨(長湍 韓氏)

(5) 통사랑(通仕郞) 근(瑾)을 비조로 하는 당진 한씨(唐津 韓氏)

(6) 첨사(詹事) 원서(元?)를 비조로 하는 한양 한씨(漢陽 韓氏)

(7) 중찬(中贊) 희유(希愈)를 비조로 하는 가주 한씨(嘉州 韓氏)

이상 七派가 본관(本貫)을 달리했던 문중(門中)이고 그외 부안(扶安), 양주(楊州), 금계(錦溪), 교하(交河), 신평(新坪)등 본관(本貫)을 달리했던 소문중(小門中)도 있었으나 제6교 대동족보 편찬시(第六校 大同族譜 編纂時 : 이미 오래전에 청주로 합본한 바도 있음)에 청주(淸州)로 환본(還本 : 合本)하고 다만 평장사(平章事) 예(銳)를 비조로 하는 곡산 한씨(谷山 韓氏)가 많은 수를 이루고 있으나 청주 한씨와는 본(本)을 달리하는 씨족(氏族)이다.

위와같이 본(本)이 다른 한씨(韓氏)처럼 살았던 옛날(족보가 없었던 시절) 봉작(封爵 : 벼슬을 받은 위계, 또는 직책)을 받은 군읍(郡邑)이나 거주(居住)하는 곳을 각기 본(本)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