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民如子四字識

                지은이:壬戌(단기4195, 서기1862) 仲夏上澣 按使 海平 尹致定 識

原文:右愛民如子四字卽箕子遺筆也월(어조사)在英宗癸未馬韓故都金馬郡古寺壞塔中箕子後四十一代系錄及遺筆出焉鮮于氏其後裔也得之於土人弁于譜藏于家以爲寶有名극(金+克)者善士也袖榻本以示과두(올챙이)古篆蒼然可愛余敬玩摩娑不忍釋于手久矣嗚呼洪範皇極之篇卽帝王治世心法也箕子傳授武王及乎東來推其餘意愛民如子布人敎約以禮磨以義過化孟神紇于今二千有九百餘載此土之民慕之如父母愈性而愈不忘然則今此四字奚但爲鮮于氏之寶也抑亦環東土爲牧民之官皆可以爲寶也豈敢以聖人微言以忽之也극(빠를극)今刻揭宣堂之楣以爲常目警省之一助云爾

해설 역문:愛民如子(애민여자)라고 쓴 넉 字는 箕子(기자)의 遺筆(유필)이다. 英祖 39년 癸未(영조 39년 癸未年 단기4096, 서기1763)에 馬韓(마한)의 舊都(구도) 金馬郡(금마군)에 있는 옛 절의 허물어진 塔(탑) 中에서 箕子 後(기자 이후)의 41代 系錄(계록)과 遺筆(유필)이 出現(출현)된 것을 그 후예가 되는 鮮于氏(선우씨)가 그 지방 인사로부터 구하여 家譜(가보)에 수록하고 家寶(가보)로 奉藏(봉장)하였더니 이름을 극이라 칭하는 선량한 人士(인사)가 있어 그 사본을 가지고 와서 보이는데 올챙이체로 된 옛날 전자가 古色(고색)이 역역하여 실로 가상한지라 내가 鄭重(정중)히 鑑賞(감상)하였는데 만져보고

문질러보고 차마 手中(수중)에서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嗚呼(오호)라 洪範(홍범)의 皇極篇(황극편)은 帝王(제왕)이 治世(치세)하는 心法(심법)이라 箕子(기자)께서 武王(무왕)에게 이 법을 전하여 주시고 朝鮮(조선)에 오시어 皇極(황극)의 意義(의의)를 推理(추리)해서 民生(민생)을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하시고 八條敎法(팔조교법)을 宣布(선포)하여 禮義(예의)로써 敎化(교화)하신 것이 지금까지 2900여년이 되었지만 이 나라 백성들이 부모와 같이 흠모하여 세대가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못잊어 하는지라 지금에 이 네 글자가 어찌 鮮于氏(선우씨)의 家寶만 될 것인가. 朝鮮 全國(조선 전국)의 牧民官(목민관)이 모두 다 珍寶(진보)로 삼아야 할 것이다. 聖人(성인)의 微言(징언)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니 널리 알려서 刻字(각자)로하여 宣化堂(선화당) 문설주에 걸어두고 항상 눈 여겨 보고 自己(자기)所行(소행)을 警戒(경계)하는데 도움이 되게 일러둔다.

지은이:단기4195, 서기1862 임술년 여름上澣(상한) 按使(안사) 海平人 윤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