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조(始祖)

 

시조묘소

위양공 휘 란(威襄公 : 諱 蘭)은 청주 한씨(淸州 韓氏) 의 시조(始祖)이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忠淸北道 永同郡 黃澗面 蘭谷里) 태생으로 지원(諱 . 智原)의 三子요 그 선계(先系)는 기자(箕子)로부터 계출(系出)하였다. 공(公)은 중년(中年)에 청주 방서동(淸州 方西洞)에 이거(移居)하였다. 태봉왕 궁예(泰封王ㆍ弓裔)가 죽고 왕건 태조(王建 太祖)가 918년 6월 15일 철원(鐵圓 : 鐵原)에서 즉위(卽位)하는데 공의 공(功)도 있었다고 전한다. 태조(太祖) 2년 10월 배현경(裵玄慶)이 평양(平壤)에 축성(築城)하는 이점(利点)을 의논하니 王이 한란(韓蘭)과 염상(廉湘)에게 영(令)을 내려 현지(現地)에 가서 독려케 하였다. 염 상이 중도에 병이 나서 강윤형(康允珩)을 대신 보내 평양성을 완성케 하니 태조는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하였다. 그후 청주 방서동에 내려와서 수년동안 농사를 지며 무농정(務農亭)에서 향학(鄕學)을 일으키고 용개평야(龍開平野)의 농토(農土)를 개척(開拓)하여 부호(富豪)가 되었더니 태조 11년(928) 후백제 견 훤(後百濟 甄 萱)을 치러갈 때 정벌군(征伐軍)에게 군량미(軍糧米)를 대주고 종군(從軍)하여 전공(戰功)을 세워 삼중대광 개국벽상공신(三重大匡 開國壁上功臣)에 녹훈(錄勳) 되었다. 벼슬은 문하태위(門下太尉)에 올랐으며 시호는 위양(威襄)이다.

 

                            시조부군의 신도비

시조부군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