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조부군의 탄생과 토란리(始祖府君의 胎生地)

 

 

 시조부군의 탄생지

토란리(吐蘭里 )는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忠淸北道 永同郡 黃澗面 吐蘭里)의 구명(舊名 : 옛 이름).  마한(馬韓) 원왕(元王)의 아들 우량(友諒)이 나라를 백제(百濟)에 잃은 후 신라(新羅)땅으로 삶을  옮기니 국도 경주(國道 慶州 : 신라의 수도)와 거리가 먼 신라, 백제(新羅, 百濟)의 접경지(接境地)인 황간(黃澗)에 거지(居址 : 살곳)를 택정(擇定)하게된 것이 당시의 정세(情勢)로 보아서 족히 수긍(首肯) 할수 있으며 세거(世居 : 대를 이어 삶)하던 가문(家門)에서 시조부군(始祖府君)이 탄생(誕生)하신 사실이 황간읍(黃澗邑誌)지 에 실려 전(傳) 해 옴을 알게 되었음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난곡리 마을로 들어서면 좌편(左便) 으로 부군의 탄생하신 터가 있는데 이곳을 동리 사람들은 한정승(韓政丞) 태지(胎地 : 나신곳)라고 부른다.

  부군께서 탄생하실 때 부근 산야 일대(山野一帶)의 지면(地面)에서 땀이 흠씬 흘렀다 하여 이 마을을 토한리(吐汗里)로 부르게 되었더니 뒷날 토란리(吐蘭里)로 바꾸어 부르다가 현재는 난곡리 (蘭谷里)로 되어 있다.

부군(府君)이 사셨다는 대지(垈地)가 약400여평 되어 중앙종친회가 이를 복구(復舊)하고자 매입(買入)하려 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이 대지에 살고 있는 3인 중 한사람의 소유분(황간면 난곡리 227-7) 539㎡ (163평)만 1991년 4월 매입하여 보존(保存)하고 있음을 첨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