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조부군의 방정리 유기(始祖府君의 方井里 遺基)

 

 

방정리 유기비

시조부군이 사시던 유기(遺基 : 옛 터)가 지금의 청주시 방서동(淸州市 方西洞인 속칭(俗稱) “대머리”로 불리는 마을이다. 부군께서 처음에 이 길지(吉地)을 택(擇)하여 마을앞에 암석(岩石)을 쪼아 방정(方井 : 돌을 네모각으로 다듬어서 우물 밑으로부터 정사각형으로 쌓아 올림)을 파서 용수(用水)로 쓰고 뒷산마루(後麓高原)에 무농정(務農亭)을 짓고, 여기서 자기 수양(修養)과 훈학(訓學)으로 몽매(蒙昧)한 후진(後進)을 일깨우는 한편 황무지(荒蕪地)를 개간(開墾) 하고 농사(農事)을 권장(勸奬)하니 부농(富農)을 이루었다. 때마침 고려 왕건 태조(高麗 王建 太祖)가 견 훤(甄 萱 : 後百濟의 始祖)을 정벌(征伐)할 때 청주에서  머문 고려 10만 대군에게 군량(軍糧)을 대어주고 드디어 종군(從軍)하시니 삼한(三韓)을 통합(統合)한 개국 원훈(開國 元勳)다 되셨다. 이는 고려 건국 11년의 일이니 시조부군이 평양성(平壤城)을 축성(築城)할때 독려관(督勵官)의 책임(責任)을 맡으셨던 훨씬 후의 일이다.

註 : 裵武烈公(裵玄慶) 本傳 抄  이렇듯 이곳 방서동(方井里)은 시조(始祖)께서 고려창업(高麗創業)에 협찬하신 곳이요 천지만엽(千枝萬葉)으로 번창한 자손(子孫)들의 뿌리가 내린 영지(靈地 : 신성한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