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록(忠節錄)

 
부정공 한남수 ( 副正公 韓南秀 : 22世)
 公의 字는 방한(邦翰)이요 호는 신촌(新村)이니 좌랑공(佐郞公) 팽년(彭年)의 아들이요 양혜공(襄惠公)의 후손이다.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으나 곧 바로 어머니상(喪)을 당하여 눈물을 흘리며 여묘(廬墓)살이를 하였는데 사람들이 그곳을 효자동(孝子洞)이라 불렀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하자 선조(宣祖)가 특별히 남문(南門)을 지키라고 명(命) 하였는데 이는 공(公)의 충성스러운 용맹(勇猛)과 기개(氣慨)가 평소부터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과 같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국난(國難)에 나아갔는데 전후(前後)의 사적(事蹟)이 《우산일기(牛山日記)》,《야사(野史)》,《읍지(邑誌)》,《절의록(節義錄)》에 모두 기록되어있다. 公이 일찌기 지은 시(詩)에" 가문(家門)의 구업(舊業)인 청전(靑氈 : 代代로 전해 내려오는 유물(遺物) 또는 구업이라고 한다면 정(靜)의 모전(毛氈)을 짜던 업(業)은 간데가 없고 보국(報國)의 처음 마음(가진 뜻) 백발(白髮) 되자 짧아졌네" 라고 하였다.
公의 배위(配位) 해주오씨(海州吳氏) 는 남도령 연경(南都令 延慶)의 따님으로 墓는 안량 의신동 자좌 (安良 義臣洞 子坐)에 公과 상하조(上下兆)이다. 아들은 참판 득량(參判 得良), 군수 해룡(君守 海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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