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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한스
ㆍ작성일 2012-05-01 (화) 07:59
ㆍ추천: 0  ㆍ조회: 1357       
ㆍIP: 110.xxx.73
가난한 아프리카의 생명의젖줄을 찾아준 세계속의 한국인
韓 相 麒(한상기)   안정된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아프리카행을 결심한 한상기는 서울대학교 농대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국제 열대 농학 연구소(IITA)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때가 1971년이었다. 그가 국제 열대 농학 연구소(IITA)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주력했던 것은 카사바, 앰(마류), 고구마, 토란류, 식용바나나 등의 품종 개량을 위한 연구였다. 한상기가 이 작물들을 연구 대상으로 택한 이유는 첫째, 이것들이 가난한 아프리카인들의 배를 채워 주는 값싼 작물이라는 것과 둘째, 이 작물의 품종 개량에 계속 실패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난한 대륙의 가장 가난한 이의 주식 작물을 개량함으로써 그 가난한 이들 편에 서서 젊은 기백을 다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길을 택하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아프리카는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서구 제국의 근대 산업을 위한 자연 자원의 공급처 역할밖에 할 수 없었던 아프리카가 서구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60년이었다. 독립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대부분의 산업 기관과 시설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펴 나갔는데, 산업의 국유화 정책은 생산성을 저하시키고 외부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 국제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독립과 더불어 도입되었던 일당 독재 체제가 군부들에 의해 장악되면서 야기된 정치적 혼란은 이런 경제 상황을 더욱 어렵게 했다. 그래도 1980년경까지는 농산품과 광산품 수출로 국가 재정상태가 비교적 튼튼한 편이었다. 그 후 농산품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수요가 감소한 것과 더불어 주요 광산품인 동의 국제 수요가 급격히 감소되어서 가격이 폭락하자 아프리카의 경제 상황은 더욱 침체되었다. 아프리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정치.경제 문제에 있어서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사람 수가 해마다 수백만에 이르고 중부 아프리카와 동부 아프리카에는 에이즈 감염률이 높아져 인명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런 위협적인 보건 문제를 안고 있는 아프리카지만 지난 20년간 인구 증가 추세는 연 3.1%씩 증가하여 약 5억의 인구에 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급격히 늘어가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연 3 ~ 4%씩 식량을 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최근의 식량증산은 연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아프리카의 식량난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상기가 연구한 카사바, 앰(마류), 고구마, 토란류, 식용 바나나 등의 품종 개량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아프리카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아프리카의 농업이 성행하지 못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지질학적으로 아프리카는 가장 오래되어서 풍화 작용이 지나치게 되어 비가 오면 토양 유실이 쉽게 되고 지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래서 개간한 땅에 계속 작물을 재배할 수가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땅을 개간해서 이용한 다음 다시 숲으로 전환하여 지력을 갱신하는 휴한농법(休閑農法)을 쓰기도 했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토지가 혹사되어 지력이 급격히 쇠해졌다. 게다가 저지대는 풍토병이 심하여 고지대를 이용한 밭농사 위주의 농업밖에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 인력도 없었을 뿐더러 혹 연구 인력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연구된 결과를 농민에게 보급할 수 있는 농촌 지도 체제도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한상기는 우선 카사바, 앰(마류), 고구마, 토란류, 식용바나나의 품종 개량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 작물은 병충해가 심해서 수량이 적다. 카사바의 경우는 바이러스병과 박테리아에 걸리면 수량이 80%까지 감소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량하여 수량을 높이고 생산안전성을 높여 보자는 것이 주된 연구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카사바에는 사람에 유해한 청산이 들어 있어서 청산함량을 줄이는 것도 하나의 연구 과제였다.품종 개량을 위해서는 유전 자원을 획득해야 했고 그로부터 내병, 내충성 유전인자를 현지에서 가장 적응하기 쉬운 좋은 품종을 도입해야 했다. 한상기는 이 유전인자를 획득하기 위해 나이지리아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 들어갔다. 때로는 자동차가 진흙탕에 빠져 헤어 나오지도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나빠 차가 튀어 오르는 바람에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나이지리아는 길이 매우 험준한데다 운전수가 매우 위험하게 운전하기 때문에 사고율이 높고 늘 무장 강도에 대한 위험이 컸다. 나이지리아 내전인 비아프라 전쟁이 있었던 당시는 더욱 심했다.1972년 당시 내란 중이었는데도 한상기는 유전 자원 채집을 위해 이바단시에서부터 카메룬 야운대까지 무려 4000km의 거리를 보통의 자동차로 떠났다. 운전수는 약 400km를 채 가지 못해서 엔진 과열 현상이 생기자 이바단시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한상기가 아니었다. 엔진이 과열되면 서서 식히고 물을 갈아대기를 수시로 해 가면서 정글과 산비탈을 가까스로 통과하여 여행을 끝까지 마쳤다. 이러기를 여러 번, 결국 좋은 유전인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여행은 유전인자의 발견 뿐 아니라 한상기 자신에게도 아프리카를 견뎌 나갈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준 여행길이었다. 그 덕분에 한상기는 22년간 아프리카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결근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유전인자를 얻기 위한 여행에서 카사바의 경우는 수천 가지의 지방종 가운데 단 하나의 계통이 바이러스병과 박테리아병에 강한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우수한 지방종과의 교배를 거듭하여 결국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이 강하여 수량이 2-3배나 더 많이 나고 또 품질이 비교적 좋은 계통을 선발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고구마에서도 바이러스병과 바그미에 강한 품종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으며 얨에 있어서는 이제까지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인공 교배를 성공하여 많은 교배 종자를 얻게 되었다. 토란은 '지베렐린'이라는 호르몬을 처리하여 개화를 촉진할 수 있었으며 식용바나나는 인공 교배 계통을 생산하여 곰팡이 병에 강한 계통을 개발할 수 있었다.이렇게 개량한 품종들을 여러 나라에 보내기 위해 식물 조직 배양과 바이러스 유무 판정법을 연구팀이 함께 만들어서 개량한 품종들로부터 바이러스 병균을 제거할 수 있었고 그 유무를 확실히 판정할 수 있었다. 이런 절차를 거쳐, 개량된 카사바는 아프리카의 30여 개국에 보내어 심게 했고 고구마는 세계적으로 40여 개국에 보급.장려할 수 있었으며 얨은 10여 개국, 식용바나나는 5개국에 보급되었다. 나이지리아에 한상기가 개량한 품종이 대대적으로 보급.제배되면서 세계 4위의 카사바 생산국이었던 나이지리아는 지금 세계 1위의 생산국이 되었고 이런 증산으로 생긴 국가 수입이 10억 불이나 된다. 이로써 연 10억 불의 재해를 감소시키는데 성공했다. 씨에라리온에서는 전국 고구마 재배면적의 80% 이상에서 저자의 개량 품종을 재배하고 있으며 카메룬은 생산과잉 현상까지 생겼다. 한상기가 아프리카에서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단순한 품종 개량이 아니라 농업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농사는 농학자가 짓는 것이 아니고 바로 농민이 짓는 것이며, 농학자가 개발한 기술이 농민에게 보급되어 이용되지 않는다면 그 기술이 필요 없다는 것이 한상기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광활한 아프리카에서는 실제로 농학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를 전달.보급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이를 위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훈련생을 데려와 새 농업 기술 특히 새로운 품종에 대해 시험 재배하고 보급하게 하였다. 한상기의 훈련을 통해 양성된 인력은 단기 훈련생만 약 800명에 달하고 석사 학위를 받은 장기 훈련생도 15명이 된다.그들을 훈련시키기를 22년, 한상기는 아직도 그의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훈련생을 자기 나라로 보내 놓고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격려하면서 그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할 자리까지 마련해 주고 있다. 동부 아프리카 카사바 연구 네트워크, 남부 아프리카 구조작물 연구 네트워크, 서부 아프리카 구조작물 네트워크 등이 모두 이런 기반 위에서 형성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식량 안전을 위해 바쳐 온 그의 삶 22년이라는 난고의 세월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이름아이콘 카니발
2012-05-01 17:11
좋은 내용을 소개 하여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이름아이콘 사철나무
2012-05-02 12:04
본인의 숙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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