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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사철나무
ㆍ작성일 2012-08-03 (금)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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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韓訓) 詩와서책의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2권   황해도(黃海道) 발행년도 이행(李荇)1969년

우봉현(牛峯縣) 『신증』【궁실(宮室)】 객관(客館) 한훈(韓訓)의 시에, “외로운 객관에 봄이 깊고 버들실 드리웠는데, 푸른 산의 두 언덕엔 여덟.아홉 집이 있네. 객사 난간에 게을리 누워 낮잠이 들었는데, 한 주렴[簾] 성긴 빗발에 배꽃이 떨어지네.”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2권   황해도(黃海道)     발행년도 이행(李荇)1969년

안악군(安岳郡) ○ 한훈(韓訓)의 시에, “만리 건곤(乾坤 천지)을 구경한 눈[眼]으로 오늘 아침 다시 누대에 올랐네. 강산은 친구가 될 만하고, 우주 간에 휴부(休浮)를 맡기네. 붓을 들면 일천 수(首)를 휘두르고, 넓은 가슴엔 구주(九州)를 좁게 보누나. 1년 간이나 사절(使節) 따라, 길이 한가한 놀이 하였네.” 하였다.

허백정문집(虛白亭文集) 권지 3

잡저(雜著)

*한훈(韓訓)의 *자설(字說)

나와 원주목사(原州牧使) 한(韓)공은 오랜 교의(交誼)가 있고, 공의 아들은 이름이 훈(訓)이라 한다.  한(韓)씨는 왕실과 척의(戚誼)가 있는 세상에 드러나게 훌륭한 가문이며 한때 호족(豪族) 귀문(貴門)으로 으뜸이어서 그 자제(子弟)들은 아마도 경서(經書)의 연구에는 무심하였는 듯하다. 그러나 훈(訓)의 학문 좋아함은 천성(天性)에서 나와서 소년 시절부터 독서하며 날로 한가한 여가가 없었고 몸은 호사(豪奢)한 옷차림이나 놀이에 빠지는 마음과 습관이 없었다.  가슴에 품은 생각은 모두 옛 성현의 글이요. 청년이 되면서 진사(進士)에 오르고 향학(鄕學)에서 교우(交友)하던 동료들은 이보다 앞선 사람이 없었으나 오히려 부지런하고 골돌하여 옛 법을 배움에 더욱 힘써 대궐문 앞에 가서 장차 외치며 아름다운 글을 올려 이 세상에 옛 도의를 소리칠 만하다. 하루는 내 아들을 따라와 그의 자(字)를 나에게 지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옛날 경주(慶州)의 수령으로 있을 때 한공은 병부(兵符)를 차고 영남좌도(嶺南左道)에 있는 진영(鎭營)에 있었으므로 훈(訓)이 성친(省親)하고 돌아온 길에 경주를 지날 때 감사(監司) 성사원(成士元)공이 마침 순시(巡視)차 왕림하였으므로 함께 저녁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인하여 이야기가 전대(前代) 인물(人物)의 우열(優劣)에 미쳤는데, 훈(訓)은 역역히 그 행한 일의 행적(行蹟)을 들어 십중에 하나도 빠짐 없이 하니 나는 진실로 독실한 옛 군자와 같음을 알았다. 지금 이미 학문이 이루어졌어도 오히려 밤낮으로 서당에서 공부하며 고인(古人)을 벗으로 숭상하는 사람이다. 그가 장차 벼슬 길에 들면 시행(施行)과 조치(措置)에 미혹(迷惑)하지 않을 것을 가히 알만 하다. 그러므로 이에 자(字)를 지어 이르기를 사고(師古)라 하다. 고금 인물의 그 공명과 부귀는 족히 논할 것이 없다. 그 품위는 상․중․하, 그 유(類)는 정(正)과 사(邪), 충(忠)과 영(佞 : 아첨), 직(直)과 사(詐)가 있어 같을 수 없으니, 훈유(薰蕕 : 군자와 소인)와 같이 빙탄간(氷炭間)으로 매양 서로 반대가 된다. 사고(師古)씨에게는 그 누가 스승일까? 청컨대 삼가히 이를 택할지어다.  그의 아버지 한(韓)공의 휘는 충인(忠仁)이요. 나의 아들 이름을 언방(彦邦)이라 한다.

황해도사 한훈을 송별할 때 준 시의 서문

나는 성균관의 1)사석(師席)에 있기를 몇해가 되었다. 이에 한씨인 자네는 이름난 진사됨을 안지가 이미 사오년이 되었다. 선조조에 뛰어난 젊은이를 거두어 많은 선비에게 *책문(策問)하니 한씨인 자네를 제1로 가려 뽑게 되어, 대하여 보니 모두 말하기를, 『국가는 사람을 얻었도다.』하였다. 성상께서 모든 백성에게 임하시어 *쟁신(諍臣)을 구하여 *보익(輔翼)을 삼으려고 한씨인 자네를 *수선(首選)으로 받아 정언(正言)에 제수하였다.  또 모두 말하기를, 『조정에서는 *간관(諫官)을 얻었다.』하다. 내가 일찍이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여 *대간(臺諫)과 더불어 함께 하였다. 한자(韓子)가 이제에 고증(古證)을 끌어 당시의 재상(宰相)의 일을 극론(極論)하여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  곧 그 말은 그 마음 속에 품었던 바임을 점칠 수 있었다. 이에 또 이를 앞서 알고 말하기를, 『간관을 얻는다는 것은 사람을 얻는 것이니 그 말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오.』하다. 이후에 대간이 함께 말한 일은 그 일이 서너 차례가 되어도 상감은 이에 정중하였으나 곧 머리를 끄덕여 긍정하지도 않으시다가 말하는 자들이 *복합(伏閤)하여 떠나지 않기를 몇 달이 되면 이에 한 일이 윤허(允許)되니 이같이 하기를 두 세 번이면 마침내 모두 그 말에 따르게 되니 성상이 간언 받아들임의 도량이 충신의 말을 따져 밝힘에 부지런하심을 알았으니 한씨자가 실로 일조(一助)가 되었다. 어찌 좋아하지 않겠는가! 아! 조정에 한 착한 신하가 있으면 사방이 그 은덕을 받으니 하물며 친히 그 처지에 있는 자에 있어서리오.  병진(1496)년 봄에 한자(韓子)는 정언(正言)을 거쳐 황해도 도사(都事)가 되어 외직(外職)으로 나갔다. 그 지방에 전염병이 성하게 만연되어 백성이 많이 죽게 된지가 시일이 오래 되었다. 역대 임금의 백성 기르는 어진 덕에 힘입어 비록 조금은 숨은 돌리게 되엇으나 여러 타도에 비하면 어려웠다. 그러므로 막부(幕府)에서 정사를 행함에 절조를 지켜 곁에서 도울 사람은 반드시 그 어짊이 타도 감사와 도사들에게 우두머리가 된 연후에야 그 다스림의 효험은 가히 바랄 수 있다. 마치 지금의 황해도는 거의 그러하지 않은가! 감사 이공은 어질고 유능함이며 소문나고 한씨자가 보좌함이 되었으니 한씨자도 또한 어질었다. 두 아름다움이 합하여 그 결과가 이루어짐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황해도로 가는 길에는 수십주의 고을이 있으니 한 지아비나 한 지어미가 임금의 혜택을 입지 않은 자가 있겠는가? 구중궁궐 안에서 임금께서 너그러히 서쪽(황해도)을 돌아보고 근심하심이라. 그런즉 그 행실에 어찌 가히 말이 없겠는가?  사헌부 사간원의 친구나 한림원의 선비들이 모두 송별의 시가 있으니 모두 지어 읊을 만하다. 겸하여 친하고 또 서로 아는 인연이 있으므로 이를 위하여 서(序)를 쓴다.

문서구분 : 한국문집총간

서    명 : 허백정집(虛白亭集)

권 차 명 : 虛白亭文集卷之二

문 체 명 : 序

기 사 명 : 送黃海都事韓訓詩序

저/편/필자 : 홍귀달(洪貴達)조선(朝鮮) 시대(時代) 10대 연산주(燕山主) 때의 문신(文臣).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 본은 부계(缶溪). 벼슬이 대제학(大提學)에 이름. 연산주(燕山主) 4(1598)년 무오사화 때 왕의 실책을 간(諫)하다가 좌천됨. 갑자사화 때 모함(謀陷)을 받아 죽음. 시호(諡號)는 문광(文匡). 저서(著書)『허백정문집(虛白亭文集)』 등. (1438 ~1504)

경정선생집(敬亭先生集) 권지 4(詩)

휴류(鵂鶹 : 수리 부엉이)  

낮에는 태산같이 큰 것도 보지 못하나, 밤이면 벼룩이나 이도 능히 살피네.  가의(賈誼)의 복조(鵬鳥)와 한훈(韓訓)의 여우는, 두 이름이나 본래 한가지 일이니.  이를 쏘아 흉하고 요망함을 죽일 것이나, 점쳐서 예언의 말로 결정하였네.  만약 각각 일을 암시하여 부침이 아니라면, 두가지 모두 통해 주지 않았으리.  해질녘에 햇빛은 햇빛 비낌과 다르고, 여관은 우리집이 아니네.  코고는 소리 우레같이 울려도, 화와 복에는 상관 없네.
十五. 천지인문(天地人文):천과지와인의 문(文)  

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天)의 *문(文)이 있고 지(地)의 문(文)의 있고 인(人)의 문(文)이 있으니, 인문(人文)과 천지(天地)의 문(文)이 다른가? 2)결승(結繩)의 시대의 전에도 또한 문(文)이 있었던가? *하도락서(河圖)의 문(文)도 천지인의 문이라 말할 수 있는가?  *당우(唐虞) *삼대(三代)의 때에도 군신(君臣)간의 불찬성의 말과 사제의 문답의 말과 거리와 골목의 상스럽거나 촌스러운 말도 모두 경적(經籍)에 있어 문(文)이 되어 후세에 *순경(荀卿)․*묵적(墨翟)․*양주(楊朱)․*왕수인(王守仁)은 모두 뜻을 문(文)에 두었으나 육경(六經)과 더불어 비함을 얻지 못하니 아울러 무엇 때문인가? 문장(文章)이란 세상과 더불어 오르내리니 송원(宋元)은 한당(漢唐)에 미치지 못하고 한당(漢唐)이 삼대(三代)에 미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한자(韓子)의 문(文)은 8대의 쇠퇴함을 일으키고, *구양수(歐陽脩)의 문(文)이 인의례악(仁義禮樂)의 설(說)을 들어 내었으나 후세 사람들은 과연 모두 고문(古文)을 능히 하지 못하였던가?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정이(程頤),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 등 여러 군자(君子)들의 발언(發言)함이 육경(六經)에 안팎으로 문(文)이 됨이 어찌 배운 바 되었던가? 전술(前述)한 바의 글은 또한 가히 들음이 자상한가? 그대 대부는 이를 강(講)하여 익히 알고 있다. 그것을 각각 다 편저(篇著)하라』하시다.  홍치(弘治) 갑인(1494) 별시(別試)에 제1인으로 급제한 한훈(韓訓) 신은 대하여 삼가 생각하오니 주상전하께옵서는 총명(聰明)하고 예지(睿智)의 자질(資質)로 조종(祖宗)을 이어 든든한 국기(國基)를 유구(攸久)한 세상에 세우려고, 오히려 뜻을 잃은 듯하시고 스스로 성인 되지 않은 듯 하시니 드디어 나아가 신 등은 어전(御前)에서 첫째로 천지인(天地人)의 문(文)을 들어서 역대의 문(文)이 전하(殿下)께서 (道)를 바라보고도 아직 보지 못한 듯 성한 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은 비록 우매(愚昧) 하오나 감히 정백(精白)하지 못한 한 마음으로 상감께서 물으심의 만분의 일이라도 부응(副應)하여 뜻을 천하에 펴려는 것으로 신은 엎드려 3)성책(聖策)을 읽고 말하기를,  신은 생각하옵기에 하늘을 보면 자연의 문(文)이 있으므로 일월(日月)이 *조림(照臨)하니 별들이 이에 찬연히 벌이고 땅이 자연의 문(文)이 있으므로 산천(山川)의 흐름과 재(峙)가 이에 있습니다. 초목이 이에 살고 자랍니다. 사람이 천지(天地)의 기운을 받아 *양의(兩儀)의 사이에서 산 즉 그 도덕과 인의(仁義)의 문(文)이 가운데에서 실(實)함은 그래서입니다. 예악(禮樂) 문장(文章)의 문(文)은 밖에 나타남이니 그래서입니다.  그 문(文)을 말한 즉 비록 각각 같지 않으나 그 이치를 말한 즉 일찍이 다름이 있지 아니하나 어찌 결승(結繩)의 시대 앞 사람은 문(文)이 아마 펴지 못하였을 것이고 천지(天地)의 문(文)이 이미 하도(河圖)가 나온 뒤는 이미 나타났으니 인문(人文)이 이미 나타나 *삼재(三才)의 도(道)가 비로소 갖추어졌습니다. 그러한 후에 복희(복羲)씨의 팔쾌(八卦)의 그림이 나오고 문(文)의 도(道)가 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는 곧 천지(天地)의 문(文)이므로 곧 인(人)의 문(文)입니다.  대우(大禹)는 *구주(九疇)를 벌이고 문(文)의 이(理)가 찬연(燦然)하니 이는 곧 인의 문(文)이며 곧 천지(天地)의 문(文)입니다. 이는 그러므로 오직 성인(聖人)만이 능히 천지(天地)의 문(文)을 체득(體得)하고 이를 마음에 담아 도덕이 되어 이를 발(發)하여 문사(文詞)가 됩니다. 대개 성정(性情)을 읊은 311편의 시가 있으나 정벌(征伐 : 몽고병의 침입을 정벌함) 한 일이 있은 지 242년의 세월이 흘러 이 또한 그 자연(自然)의 문(文)으로 인하여 그 *온축(蘊蓄)된 바의 결실(結實)이 나타난 즉 전하(殿下)께서는 이미 신충(宸衷 : 임금의 뜻)에 이를 강(講)한 본바탕입니다.  신은 어찌 감히 그 사이에 망녕된 의논을 하겠습니까? 삼가 엎드려 상감의 대책(對策)을 읽어 말합니다. 신은 일찍이 *전모(典謨)를 보아 실려 있는 바가 모두 *우불지언(吁咈之言)으로 깨우쳐 드리고, *서명(誓命)의 기록한 바는 경계함을 고하고, 힘씀을 권하는 사설(辭說)은 상하(上下)의 사이가 정이 통하고 군신(君臣)의 사이는 뜻이 상달하지 아니함이 없고 문(文)에 뜻 있음을 구하지 아니하고 도덕(道德)을 몸에 얻은 자는 자연히 밖에 나타나 보이니 어려운 문답(問答)을 의심(疑心)함에 이르고, 20편의 논어(論語)에 4)주역(紬繹) 변설(卞說)함이 기술되고 7편의 인의(仁義)를 명백히하여 대학(大學)에 전(傳)하고 *수기치인지도(修己治人之道)가 밝아 중용(中庸)을 지어서 *성명 도덕(性命道德)의 이치가 들어나니 이는 사제(師弟)의 사이 뿐만아니라 이 문(文)의 진실(眞實)을 *강명(講明)할 따름입니다. 돌아온 세상의 학문을 *조유(詔諭)할 뿐입니다. 시인(詩人)에게 이르러서는 읊은 바의 재료가 거리의 비루한 *야객(野客)의 사장(詞章 : 시가와 문장)이요. 부인이나 여자의 사이에서 많이 나오고 후세(後世)의 사람의 문(文)이 미치지 못함은 때가 그렇게 함입니다.  *난릉(蘭陵)의 학(學)같음에 이르러서는 비록 왕도를 높이고 백공(伯功)에게 굴(屈)하고 인의(仁義)를 귀히 여기고 공리(功利)를 천(賤)히 여겼다 할지라도 그의 실(失)인 즉 성악지 설(性惡之說)이었습니다.  강도(江都)의 대책은 곧 그 마땅함이 바름에 있고 그 이로움을 꾀하지 않고 그 도(道)를 밝히고 그 공(功)을 헤아리지 않았으나 그 실(失)은 곧 재이(災異)의 설(說)에 흘렀습니다.  *양웅(楊雄)이 역경(易經)을 본받아서 *태현(太玄)을 지었으나 식자(識者)들은 그 천근(淺近)함을 알았습니다. *왕통(王通)은 비록 저서 중의 설(說)함이 논어(論語)를 본떳으나 후세(後世)에 그 *참절(僭竊)함은 알았으니 모두 다 뜻을 문(文)에 두었으나 몸에 있는 것은 실답지 못함으로 문(文)에 발(發)한 것은 이처럼 노둔(魯鈍)하니 어찌 족히 육경(六經)과 더불어 더욱 나란할 수 있습니까?  이는 곧 전하가 이미 마음 속에 이를 판별(判別)하여 상세하고 분명할 것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그 사이에 군소리를 끼우겠습니까? 엎드려 *성책(聖策)을 읽고 말하오니 ������신이 생각하옵기에 문장(文章)의 성쇠(盛衰)는 세상의 5)승강(升降)에 따르니 대개 송원(宋元)의 문(文)은 한당(漢唐)의 *질실(質實)에 미치지 못하고, 한당의 문은 또 삼대(三代)에 미치지 못한 것은 도덕을 몸에 채움이 다하지 못함에 있으므로 문장을 밖에 발(發)함은 또한 바로잡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후세의 사람이 모두 문(文 )에만 마음을 쓰고 문(文)의 진실함을 구하지 않으므로 *알묘(揠苗)의 근심이 있습니다. 모두 인(仁)에 뜻을 새겨서 이치(理致)의 순수함에 근본을 삼지 아니함으로 *욕속부달(欲速不達)의 폐단이 있습니다.  홀로 *창려(昌黎)의 문(文)은 용(龍)이 나는 듯, 봉황(鳳凰)이 뛰는 듯, 해가 빛나는 듯, 옥이 깨끗한 듯, 순수하여 한결같이 정(正)에서 나옴으로 *원도(原道) 일편(一篇)으로 *명교(名敎)를 부지(扶持)하고, *불골(佛骨)을 배척하는 표(表)를 다시 올려 이단(異端)을 물리쳐 바르게 함이 임금이 내리신 대책(對策)에 이른바 문(文)을 이르켰다하나 *8대가 쇠퇴(衰退)한 것은 이것입니다.  *구양공(歐陽公)의 문(文)같은 즉 창려(昌黎)의 근엄(謹嚴)을 본받고 공자와 맹자의 간결(簡潔)하고 *고아(古雅)함을 익히어, 순(舜) 임금의 뜰에 놀아 *소소(簫韶)의 음악을 들은 듯하여 읽기 까다로운 구절(句節)이 변하여 혼후(渾厚)해 지고 *험괴(險怪)한 *사장(辭章)이 바뀌어 평이해지니 바로 상감의 책문(策文)과 같아 이른바 인의(仁義)와 예악(禮樂)의 설(說)함이 이것입니다.  비록 그러나 그 삼대(三代) 이하의 문(文)을 미루어 본 즉 이 *수자(數子)는 비록 족히 못하지 않으나 이를 삼대(三代) 이상의 문(文)에서 구한 즉 이 수자(數子)의 문(文)을 과연 성경(聖經)에 합당(合當)한가 합니다.  이는 곧 전하가 이미 마음에 익히 생각함이라 신이 어찌 감히 그 물음에 *억설(臆說)하오리까? 신이 엎드리어 성상의 7)책문(策文)을 읽고 말하기를,   신은 그윽히 이르기를, 주공(周公)이 죽자 성인의 도가 행해지지 아니하며, 맹자(孟子)가 죽자 성인의 학문이 밝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문(文)은 천도(天道)를 구하지 않고도 땅에 떨어지지는 아니하였으니 송조(宋朝)의 *염계(濂溪)에 이르러 그 근원을 *준설(浚渫)하듯이 깨끗이 하고, *이락(伊洛)은 그 흐름을 인도하여 *관민(關閩)의 빛이 남을 도왔습니다. *경성(景星)이나 봉황(鳳凰)은 천하의 쾌(快)함이 *태산북도(泰山北斗)인 학자를 보고 그 말의 인의(仁義)에 의하여 돌아온 즉 *통서(通書)의 수편(數篇)의 논지(論旨)에 나타나고 음양인 즉 태극(太極)의 일도(一圖)에 보이니 이는 염계(濂溪)가 역(易)에 근본을 두어 그러하였습니다. 성경(誠敬)으로써 덕(德)에 들어가는 문이 됨으로 *옥루(屋漏)의 홀로 있는 곳에서도 근신함으로써, 이는 이락(伊洛)의 학문이 중용(中庸)에 근본을 둔 것이니 그래서입니다.  완고(頑固)함을 바로 잡고 어리석음을 경계하여 아성(亞聖 : 맹자)의 성선(性善)의 설과 양기(養氣)의 논이 있어 의(義)를 바르게 하고 이치를 궁구함으로 선성(先聖 : 공자)의 발현(發現)하지 못한 바를 발현(發現)하여 온축(蘊蓄)하니 이는 곧 *장자(張子)의 학문이요, 어찌 근본되는 바가 없어도 그럴가요?  일심(一心)으로 조화(造化)의 근원(根源)을 궁리(窮理)하여 일신(一身)으로 천지(天地)의 운(運)을 보아 사물(事物)의 이치를 갖추는 주자(朱子)의 학문은 어찌 근본되는 바가 없이 그러할 것인가요?  전하(殿下)는 삼대(三代) 이상의 문(文)에 후대(後代)의 제유(諸儒)의 학문은 이를 얻어서 자상하고 이를 설(說)하여 깊음으로 그 발현한 여러 언설(言說)이 같이 크게 참다와 천년의 *사문(斯文)에 하나의 큰 다행입니다.  신은 진부(陳腐)한 말을 주어 모아 앞에 대략 진술하였습니다. 청하옵건대 당금(當今)의 일로 써 마치겠습니다. 신이 생각하옵기에 문(文)이라 함은 도(道)를 실은 그릇입니다.   아마 조정(朝廷)에 상달(上達)되면 모든 8)전장(典章)에 베풀어지고 모든 정사(政事)에 조처(措處)되면 천하가 현연(顯然)하여 사문(斯文)이 복을 누리고 그 드러나지 아니함에 미쳐서는 사우(師友)의 사이에 형성(形成)된 여러 문답(問答)이 여러 저술(著述)에서 나타난즉 천하(天下)가 은연(隱然)히 사문(斯文)의 덕택(德澤)을 입습니다.  공경히 생각하옵건대 아조(我朝)의 열성(列聖)께서는 서로 이어 빛이 겹치어 태평한 세월이 계속되어서 육경(六經)을 존숭하여 높이고 백가(百家)를 물리쳤습니다.  전하에 이르러서는 문예(文藝)를 숭상함을 지켜 잃지 아니하니 예악(禮樂)이 환하게 밝았으며 인의(仁義)를 몸소 행함으로써 아래 사람들을 거느리고 도학(道學)을 앞서 인도함으로써 새 선비로써 익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유자(儒者)는 성경(聖經)의 심오(深奧)한 이치를 궁구하지 않고 *부화(浮華)한 문(文)을 다투어 숭상하니 벼슬을 매개하는 층계로 생각함으로 문장(文章)은 말로 더욱 비하(卑下)되고 풍속은 날로 더욱 야박하여졌습니다. 아마도 옛의 문(文)함은 뜻을 다하고 기교에는 다하지 아니하며 진실할 뿐이니 남에게 부림을 받지 아니합니다.  옛 삼대(三代)의 쇠잔(衰殘)으로 학교는 폐하여 쓸모없게 되며 성학(聖學)은 밝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히려 후세보다 어진 까닭은 선비가 과거(科擧)의 이로움이 있음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 언어(言語)와 문장(文章)이 비록 능히 성인(聖人)에게 다는 통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모두 탁연(卓然)하에 쓸만함에 가까웠습니다. 지금의 시대인 즉 이연(異然)하여 세상의 유자(儒者)들이 자기를 잊고 남을 따라 활 쏘기 하기에 힘쓰거나 대책(對策)․사기(史記)․과거(科擧) 등의 문(文)에 힘써 그 언어(言語)가 비록 성인(聖人)을 배반하지는 않았다할지라도 모두 사장(詞章)에 넘쳐 흘러 실용(實用)에는 부적(不適)합니다. 신은 항상 일으기를 조․묵․공손(晁墨公孫)의 패거리는 모두 과거(科擧)의 누(累)가 있습니다. 하물며 그 아랫사람에 있어서리오. 방금 문(文)으로써 선비를 뽑으나 이를 법도로써 바르게 하고 이를 유사(有司)에게서 고찰합니다. 신이 두려워함은 한갓 공언(空言)이 있을 뿐이니 심히 잘못됨은 근래의 이른 바 문(文)이라는 것입니다.  엎드리어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옵서는 더욱 돈독히 실다움을 몸소 행하시와 그 부화(浮華)의 습관을 억제하고 재예(才藝)의 하찮은 끝만 구하지 마시고 마땅히 그 도덕의 실다움을 살피면 세상이 비록 삼대이하(三代以下)의 문(文)이라할지라도 자연히 삼대이상(三代以上)의 문(文)이 될 것입니다.  신은 어찌하여 다행히도 저의 몸에 친히 이를 나타낼까 합니다. 신은 삼가 대답하나이다

1) 사석(師席) : 스승의 자리. 성균관의 요직들은 성균관 유생을 가르침으로 이르는 말. * 책문(策問) : 임금이 정치상의 문제를 묻는 일. * 쟁신(諍臣) : 임금의 잘못을 직언(直言)으로 간하는 충신. * 보익(輔翼) : 도움, 보좌(輔佐)함. * 간관(諫官) : 국왕의 처사에 대한 간쟁(諫諍)과 논박(論駁)을 관장하는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 이하 정언(正言)까지의 벼슬아치. * 수선(首選) : 과거(科擧)에서 장원으로 뽑힘. 첫째로 뽑힘. * 대간(臺諫) :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의 벼슬아치. * 복합(伏閤) : 나라에 큰 일이 있을 적에 조신(朝臣) 또는 유생(儒生)이 대궐문 밖에 이르러 상소(上疏)하고 엎드려 청하는 일. 2) 결승(結繩) : 태고시대 문자가 없을 때 끈의 매듭으로 약속의 부호로 삼음. * 문(文) : 현상(現象), 법도(法度). 글자. * 하도낙서(河圖洛書) : 하도(河圖)는 복희(伏羲)때 황하에서 나온 도형. 낙서(洛書)는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렸을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쓰이어 있었다는 글로서 홍범(洪範)의 원본이 된것. * 당우(唐虞) : 요순(堯舜). * 삼대(三代) : 중국의 하 ․  은 ․  주(夏殷周)의 세왕조 * 순경(荀卿) : 전국시대의 학자. 성악설(性惡說)은 주장. * 묵적(墨翟): 겸애(兼愛) ․  숭검설(崇儉說)을 주장. * 양주(楊朱) : 극단의 이기주의를 주장, 묵적과 대립. * 왕수인(王守仁) : (1472~1529) 명의 학자. 양명학(陽明學)을 세움. * 한자(韓子) : 한유(韓愈) (768~824) 중당(中唐)의 문호.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고문(古文) 부흥에 힘씀. * 구양수(歐陽脩) : (1007~1072) 북송(北宋)의 정치가 문인, 당송 8대가의 한사람. 3) 성책 : 상감이 생각하는 대책. * 조림 : 해와 달과 별이 위에서 비춤. * 양의(兩儀) : 천지(天地), 음양(陰陽). * 삼재(三才) : 천지인(天地人). * 구주(九疇) : 기자(箕子)가 주(周)의 무왕(武王)의 물음에 답한 천하를 다스리는 9가지 대법(大法) 곧. 오행(五行) ․  오사(五事) ․   팔정(八政) ․  오기(五紀)  ․   황극(皇極)  ․   삼덕(三德)  ․   계의(稽疑) ․   서징(庶徵)  ․  오복(五福)  ․  육극(六極). * 온축(蘊蓄) : 오랜 동안 충분히 연구해서 쌓아 놓은 학문이나 기예 따위의 깊은 지식. * 전모(典謨) : 옛 성현의 훈계(訓戒), 요전(堯典), 순전(舜典), 우모(禹謨) 등 * 우불지언(又咈之言) : 불찬성을 표시하는 말. * 서명(誓命) : 임금이 신하에 대하여 명하는 글. 전모(典模) ․  훈고(訓誥) ․  서명(誓命) 등의 글체가 있다. 4) 주역(紬繹) : 실마리를 뽑아 내어 찾음 * 변설(卞說) : 辨說, 사리를 분별하여 설명함. * 수기치인지도(修己治人之道) : 내 몸을 닦아, 남을 교화(敎化)하는 도리. * 성명 도덕(性命道德) : 천성(天性)과 도덕. * 강명(講明) : 사리(事理)를 강구(講究)하여 분명히 함. * 조유(詔諭) : 조서(詔書)를 내려서 효유(曉諭)함. * 야객(野客) : 산야(山野)에 사는 사람. * 난릉(蘭陵) : 순경(荀卿)을 말함. 난릉령(蘭陵令)을 지냈음. * 양웅(楊雄) : (전53~18), 한(漢) 성도인(成都人), 가난에도 마음이 편안하며 성인의 서(書)가 아니면 좋아하지 않았다. * 태현(太玄) : 허무념담(虛無恬淡)의 道를 말한 太玄經. * 왕통(王通) : (584~618), 수(隋)의 학자, 왕발(王勃)의 조부. * 참절(僭竊) : 분에 넘치는 높은 자리에 있음. * 성책(聖策) : 임금이 생각하는 대책(對策). * 백공(伯功) : 공을 앞세우다. 공을 가장 위로 세우다. 5) 승강(升降) : 성(盛)하고 쇠(衰)함. 오르내림. 6) 질실(質實) : 꾸밈 없고 진실함. * 알묘(揠苗) : 곡식을 빨리 되게 고갱이를 뽑아 올린다는 뜻으로, 성공을 서두르다가 도리어 해를 봄을 이르는 말. * 욕속부달(欲速不達) : 너무 빨리하려고 서두르면 도리어 일을 이루지 못함. * 창려(昌黎) : (768~824) 한유(韓愈)의 호. 창려선생이라 불렀으며 중당(中唐)의 문호(文豪). * 원도(原道) : 인도(人道)의 근본. 당(唐)의 한유(韓愈)가 지은 유도(儒道)의 원리를 밝힌 문장(文章)이름. * 명교(名敎) : 인륜 도덕에 관한 가르침. 유고(儒敎)를 이른다. * 불골(佛骨) : 부처의 유골, 사리(舍利). * 8대 : 동한(東漢), 위(魏), 진(晋), 송(宋), 제(齊), 양(梁), 진(陳), 수(隋). * 구양공(歐陽公) : (1007~1072), 구양수(歐陽修), 당송8대가. * 고아(古雅) : 예스러워 아치(雅致)가 있음. * 소소(簫韶) : 순(舜) 임금이 만든 곡조(曲調)의 이름. * 험괴(險怪) : 헤아리기 힘들고 의심스러움 * 사장(辭章) : 문장 시부(文章詩賦)를 이름. * 수자(數子) : 몇 분. * 억설(臆說) : 근거와 이유가 없이 고집을 세우는 말. 7) 책문(策文) : 책문(策問)에 답하는 글. * 주공(周公) :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무왕(武王)의 아우. * 염계(濂溪) : 중국 호남성에 있는 내 이름으로 북송(北宋)의 학자 주돈이(周敦頤)를 이름, 이 학파(學派)를 염계학파라 함. * 준설(浚渫) : 물 밑바닥을 쳐내어 깨끗하고 깊게함. * 이락(伊洛) : 정주학(程朱學)을 말함. 이(伊)는 이천(伊川), 낙(洛)은 낙양(洛陽)으로, 이천은 정자(程子) ․  낙양은 주자가 있던 곳 * 관민(關閩) :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곧 장자와 민중(閩中)의 주희(朱熹) 곧 주자를 말함. * 경성(景星) : 큰별, 경사스러울 때 나옴. * 태산북두(泰山北斗) : 태산과 북두성,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뛰어난 인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 통서(通書) : 책의 이름, 송(宋)나라 주돈이 (周敦頤)의 저술, 처음 이름은 역통(易通). * 옥루(屋漏) : 방안의 서북 귀퉁이에서 중류(中霤)의 신(神)을 제사 지내는 곳. 곧 사람이 잘 보지 않는 구석진 곳을 말한다. * 장자(張子) : 장재(張載) (1020~1077), 북송(北宋)의 학자, 횡거(橫渠) 성생이라 함. * 사문(斯文) : 유교의 도의 또는 그 문화, 유학자(儒學者)를 높이어 이르는 말. 8) 전장(典章) : 한 나라의 제도와 문물. 법칙, 규칙, 장전(章典). * 부화(浮華) : 겉보기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음. * 조․묵․공손(晁墨公孫) : 조보지(晁補之) ․   묵적(墨翟) ․   공손용자(公子龍子)등의 잡가(雜家).

◎해동야언 3   연산군(燕山君)  허봉1971년

○ 정언 한훈(韓訓)의 자는 사고(師古)이며 어릴적 이름은 학이(學而)이다. 명리를 떠난 고상한 이야기를 큰소리로 말하며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였다. 연산군이 함부로 문사(文士)들을 많이 죽이므로 드디어 도망해 숨었다가 뒤에 스스로 세상에 나와서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였는데, 식자들이 기롱하였다. 《사우언행록》

◎연려실기술 제4권   문종조 고사본말(文宗朝故事本末)  소릉(昭陵)의 폐위와 복위  이긍익(李肯翊)1966년

○ 연산(燕山) 2년(1496)에 대사간김극뉵(金克?)과 사간이의무(李宜茂), 납 김일손(金馹孫), 언 한훈(韓訓).이주(李?) 등이 헌의(獻議)하여 아뢰기를, “신 등이 생각건대 문종의 원비(元妃) 권씨의 죽음이 노산 이전이었는데도 이를 동시에 폐위시켜서 문종만은 일위(一位)로 흠향하여 지금까지 배존(配尊)의 신주가 없으니 이것은 측은한 일이옵니다. 성종은 예전에 적몰한 노비들을 노산궁인(魯山宮人) 송씨(宋氏)에게 돌려주어서 그 생활을 돕게 하였고 그 일가족속까지 사하여 모두 벼슬에 나오게 하였으니 성종의 지극한 뜻을 여기서 또한 볼 수 있사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소릉묘주(昭陵廟主)를 추복하여 문종에게 배위하게 하오면 종묘에 다행일까 하옵니다.” 하였다. 이 헌의가 예조에 내리매 예조는, “예로부터 종묘에 배위 없는 독주(獨主)가 없는데도 우리 문종은 종묘에서 홀로 제향을 받으니 의리에 온당치 못합니다. 그러나 소릉을 조종에서 폐위시킨 지 이미 오래되어 경솔하게 복위하기가 어려우니 거행할 수 없습니다.”고 아뢰었다.

◎연려실기술 제6권   연산조 고사본말(燕山朝故事本末)  갑자화적(甲子禍籍)   이긍익(李肯翊)1966년

한훈(韓訓)어릴 때의 이름은 학이(學而)이다. 병오년에 진사과에 올랐다.한훈은 자는 사고(師古)이며,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성종 갑인년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정언에 이르렀다.○ 옆 사람에 아랑곳없이 큰 소리로 청담(淸談)을 하였다. 연산주의 조정에서 글하는 선비를 억울하게 많이 죽였는데 공은 도망해 숨었다가 자진하여 나타나 죽음을 면치 못하였으니, 식자(識者)들은 그를 나무랐다. 《사우언행록》

◎연려실기술 제7권  중종조 고사본말(中宗朝故事本末)  김공저(金公著)와 조광보(趙光輔)의 옥사    이긍익(李肯翊)1966년

○ 조광보를 대궐 뜰로 잡아들이니, 큰 소리로 옛 글을 외우다가 유자광을 보고 큰 소리로 부르기를, “유자광은 소인인데, 어찌 이 자리에 있는가. 무오년에 어진 사람들을 모함해서 김종직(金宗直) 같은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이제 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상방검(尙方劍)을 얻어서 아첨하는 신하의 머리를 베고 성스러운 임금을 받들고 어진 재상을 임명하면 훌륭한 정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니, 성희안(成希顔)이 묻기를, “아첨하는 신하란 누구인가.” 하니, 조광보가 말하기를, “바로 유자광이다.” 하고, 박원종에게 말하기를, “너가 성스러운 임금을 추대했으니, 공이 과연 크지만, 어찌 폐주(廢主)의 나인[內人]을 데리고 사느냐.” 하고, 또 성희안에게 눈짓하며 말하기를, “그 전에 한훈(韓訓)이 너를 명유(名儒)라 했거늘, 이제 어째서 유자광과 함께 일을 하느냐.” 하였다. 또 사관 강홍(姜洪)이말(李抹)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강홍아, 네 아비가 죄 없이 피살되었다. 너희들은 사관이니 마땅히 내 말을 특별히 써 두라.” 하였다. 장(杖)을 열대 남짓 맞고도 통곡만 하고 마니, 박원종이 말하기를, “참으로 미친 병이 든 사람이로다.” 하고 그만두었다. 《동각잡기》

◎연려실기술 별집 제9권 관직전고(官職典故)    이긍익(李肯翊)1966년

과거 Ⅲ 등과 총목(登科摠目) 25년 갑인 별시에서 한훈(韓訓) 등 22명을 뽑았다.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   남효온(南孝溫) 찬(撰) 1971년

○ 한훈(韓訓)은 자가 사고(師古)요, 아명은 학이(學而)이다. 본관은 청주(淸州)로 서울에 살았으며, 시에 조예가 있고 병오년에 진사를 하였다.

◎동각 잡기 상(東閣雜記上)  본조선원보록(本朝璿源寶錄)     이정형(李廷馨)1971년

○ 정덕(正德) 정묘년(중종2, 1507)에 참의 유숭조(柳崇祖), 행호군 심정(沈貞), 장악원 정(掌樂院正) 김 극성(金克成), 상인(喪人) 남곤(南袞) 등이 비밀히 아뢰기를,“의관(醫官) 김공저(金公著), 서얼(庶孼) 박경(朴耕), 유생 조광보(趙光輔)와 이장길(李長吉) 등이 박원종.유자광.노공필(盧公弼)등을 해치려 합니다.”하므로, 대궐 뜰에서 국문하는데 낙형(烙刑)을 쓰기까지 하여 자백을 받았는데, 대신들을 해치고 조정을 혼란시키려 했다하여 김공저와 박경을 참형(斬刑)에 처하고, 초사(招辭)에 관련된 사람들은 등급에 따라 유배(流配)하였다. 조광보는 대궐 뜰에 잡혀와서도 큰 소리로 글을 외웠으며, 유자광을 보고는 크게 외치기를,“자광은 소인인데, 어찌하여 이 자리에 앉았느냐? 무오년에 어진 사람들을 모함하여 해쳐서 김종직(金宗直)과 같은 사람들이 모두 화를 당하였는데, 지금 또 무슨 일을 하려 하느냐? 청컨대, 상방검(尙方劍)을 빌려 간사한 신하의 머리를 베어버리고, 성군(聖君)을 추대하여 어진 정승에게 정치를 맡기면 훌륭한 정치를 볼 수 있을 것이다.”하였다. 성희안이 묻기를,“간사한 신하가 누구냐?”하니, 조광보가 말하기를,“바로 유자광이오.”하고는, 박원종에게 말하기를,“네가 성군(聖君)을 추대하여 반정(反正)하였으니 공이 과연 크다. 그러나 어찌하여 집안에 폐주(廢主)의 내인(內人)을 데리고 사느냐?”하고, 또 성희안에게 눈짓하여 말하기를,“전에 한훈(韓訓)이 너를 이름난 선비라 하였다. 지금 어찌하여 유자광과 일을 같이하는가?”하고, 또 사관(史官) 강홍(姜洪)과 이말(李抹)을 가리키며,“강홍아, 너의 부친이 죄없이 죽임을 당하였다. 너희들이 사관(史官)이니, 마땅히 나의 말을 특별히 사기(史記)에 써야 할 것이다.”하며, 곤장을 10여 대 맞고는, 다만 통곡할 뿐이었다. 박원종이 말하기를,“참으로 미치광이이다.”하고 놓아주었다. 고발한 공(功)을 논하여, 심정.남곤.김극성 등을 가자(加資)하고, 유숭조는 일찍이 그 음모를 알고도 즉시 고발하지 않다가, 심정이 장차 고발한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이 발각될까 겁내어 자기의 죄를 면하려고 아뢴 것이라 하여, 곤장을 때려 신문하고 멀리 귀양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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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이콘 사철나무
2012-08-03 20:35
네이버 국역왕조실록에 한훈으로  2011년 9월22일까지한훈으로저장되었는데
국역왕조실록오류라고 한훈싸이트가 삭제되고
현재는 한양명씨조상한지로되어있습니다.
종친회 고문 직위를 남용하여  이렇케해도됩니까
한훈 기록이 현재는 네이버 웹 문서 더보기 6번있습니다
   
이름아이콘 운영자
2012-08-05 13:05
한훈선조님의유록을 복사 올리려면 운영자에게 사전 승인을 얻어야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이름아이콘 사철나무
2012-08-08 23:29
운영자님 뿌리탐구 가문을 빛낸인물 91번한전과92번 한충인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수정해달라고 수 차례 하는것은
보이지 않으신가요r
묻고싶습니다. 고쳐주세요!!!
참의공파운영자 한훈선조님의유록을 복사 올리려면 운영자에게 사전 승인을 얻어야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8/9 08:09
   
이름아이콘 사철나무
2012-08-10 07:06
운영자님 복사해 올려도 될까요
   
이름아이콘 사철나무
2012-08-10 07:09
왜?  운영자님 뿌리탐구 가문을빛낸인물 91번과 92번은 정정하지 않으시나요?
잘못된것은 바로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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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 돌림자를알고싶습니다 한승남 2012-07-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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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 국역왕조실록검색창에한훈기록은 삭제하고 한지 검색 창 으로 .. [8] 사철나무 2012-07-14 1163
1746 참의공 한전 할아버지의 손자 한훈 [3] 참의공파 2012-07-13 1194
1745 요청 영의정벼슬하신분성함을알고싶습니다 [2] 한귀순 2012-07-09 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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