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
公의 字는 덕소(德昭)요 號는 남당(南塘)이다. 公은 근수당(勤修堂) 유기(有箕)의 아들이요 청산현감(靑山縣監)을 지낸 백탄(白灘) 여익(如益)의 손자로 숙종(肅宗) 8년 9월 13일에 태어났다. 임오년(壬午年)에 황강(黃江)에 사는 권선생(權先生)을 찾아가 뵙자 권선생(權先生)이 시(詩)를 지어주었는데 그 시(詩)에 “소년의 고재(高材)로 공자(孔子), 주자(朱子) 배우니 그대처럼 경서(經書)에 해박(該博)한 이 없다네. 초야(草野)에 사는 나를 애써서 찾아오니 다행히도 만년(晩年)에 외롭지 않네 그려”라고 하였다.
도백(道伯)과 어사(御史)가 번갈아 公의 학행(學行)을 조정에 추천하였으므로 정유년(丁酉年)에 비로소 집의(執義)의 벼슬을 하였는데 항상 경연관(經筵館)을 겸직하였다. 영조(英祖) 28년 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문집(文集) 19卷 습유(拾遺) 3卷 〈기문록 :記紋錄〉 10卷이 세상(世上)에 간행(刊行)되었다. 정조(正祖) 23년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을 내렸고 순조(純祖) 2년에 문순(文純)의 시호(諡號)를 내렸다. 문경공(文敬公) 병계(屛棨) 윤봉구(尹鳳九)가 公의 행장(行狀)을 지었고 산수헌(山水軒) 권진응(權震應)이 묘갈명(墓喝銘)을 지었다.
※철享錄 參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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