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윤공 한상환(府尹公 韓尙桓 : ?~太宗朝 12世)

公은 조선조 초기의 문신이다. 휘(諱)는 상환(尙桓)이요. 초휘(初諱)는 우복(佑復)이고 자는 백환(伯桓)이다. 판후덕부사 문경공 수(判厚德府事 文敬公 脩)의 큰 아들이요 평간공 공의(平簡公 公義)의 손자이다.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조선 태조(太祖)초 간관(諫官 : 司諫院, 司憲府의 官史)에 이르렀다.

태조 4년(1395) 3월 18일의 언록(言錄)에 임금이 장차 평주(平州), 온천(溫川)에 거동하려 하므로, 간관(諫官) 한상환(韓尙桓) 등이 상언(上言)하였다.

“신등은 전하께서 장차 온천에 거동하려 하신다는 말을 들었사온데, 병을 고치려고 하시는 것이오니 중지하시기를 바랄 수는 없사오나, 신등은 생각하옵건대 온천이 신도 (新都)에서 3백여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며 황무한 들판에서 연(輦)을 멈추어야 하오니, 병을 고치는 방법에도 좋지 못할까 하오며, 더구나, 농사철이 한창이온데, 거동하시는 곳마다 아무리 간략하게 한다 하더라도 어찌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소서.”

임금이 장무(掌務)인 보궐(補闕) 윤수(尹須)를 불러 말하였다.

“이번의 거동은 병을 고치려고 하는 것인데, 다만 민폐만 말하고 내 병은 걱정하지 않으니, 무슨 말이냐?”

드디어 윤허하지 않았다.

이 해 5월 18일 간관(諫官) 한상환(韓尙桓) 등이 군대를 강하게 하고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요점(要点)을 올려서 말하였다.

태종 15년(1415) 한성부윤(漢城府尹) 그리고 상의의정부사(商議議政府事)에 이르렀다. 배위(配位)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충간공 승순(忠簡公 承順)의 따님으로 이녀(二女)를 두었으나 아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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