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훈)록(功臣(勳)錄)   
양혜공 한여복(襄惠公 韓汝復 : 宣祖 17年(1584) ~ 仁祖 16年(1638) 20世)
 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휘(諱)는 여복(汝復)이고 자(字)는 사초(士初)로 봉사공 홀(奉事公 屹)의 아들이고 주부공 응운(主簿公 應雲)의 손자이다.
 선조(宣祖) 17년(1584) 생이고 광해군(光海君) 13년(162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녹훈도감 낭청(錄勳都監 郞廳), 예빈시 주부(禮賓示 主簿), 곡산부사(谷山府使), 첨정 겸 오위장(僉正 兼 五衛將)에 오르고 인조(仁祖) 2년(1624)에 동지 겸 부총관(同知 兼 副摠管)에 이르렀다.
 인조반정 때 백금(白金)을 내어 비용을 충당하였기 때문에 반정후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책록되고 서성군(西城君)에 봉해졌다. 이 괄(李 适)의 난(亂)이 끝남에 왕을 모시고 환도(還都)하고 가선호조참판(嘉善戶曹參判)을 거쳐 좌윤(左尹)에 이르러 인조 16년(1638) 3월 29일 55세로 졸하였다. 시호(諡號)는 양혜(襄惠)이다. 배위(配位) 정부인 청주 경씨(貞夫人 淸州 慶氏)는 참판공 성길(參判公 性吉)의 따님이며 아들은 동생 여겸(汝謙)의 자(子) 원(瑗)을 계자(系子)로 삼았다.
 공이 졸함에 관(官)에서 장사를 도우고 교서(敎書)를 내려 유적(遺蹟)을 표양(表揚)하였다. 이 해 양주 송산(楊州 松山) 임좌원(壬坐原)에 안장하였다. 배 정부인 청주 경씨(配 貞夫人 淸州 慶氏)와 합조(合兆)이다.
 비명(碑銘)은 홍문, 예문관, 제학세자좌빈객 조관빈 찬(弘文, 藝文館, 提學世子左賓客 趙觀彬 撰)으로 비를 세웠는데 1984년 10월 20일 군부대 주둔지(軍部隊 駐屯地)로 확정됨에  신곡동 둔야미(新谷洞 芚夜味) 선영하(先塋下)로 이폄(移폄)하였으며 묘비도 같이 옮겼다.
 양혜공 한여복(襄惠公 韓汝復) 이하(以下)의 수인(數人) 조상묘가 의정부시 용현동 임좌원(壬坐原)에 있었는데 1984년 10월 20일 군부대 주둔지(軍部隊 駐屯地)로 정함에 신곡동 둔야미(新谷洞 芚夜味) 선영하(先塋下)로 이폄(移폄)하고 세장지비(世葬之碑)를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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