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록(倡義錄 : 義士)

 
지사 한태현(志士 韓泰鉉 : 高宗 15年 1878∼1951 31世)
공(公)의 휘(諱)는 태현(泰鉉)또는 태연(泰淵)이요 자(字)는 경국(敬國), 호(號)는 남사(南史)이다. 참봉공 찬석(參奉公 贊錫)의 둘째 아들이고 익교(翊敎)의 손자이며 참의공 충지(參議公 忠智)의 17대 손이오 감사공 전(參議公 전)의 18대손이다.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로 인수(仁洙)의 따님이다. 공(公)은 고종(高宗) 15년(1878) 9월 12일 전라북도 남원(全羅北道 南原)에서 태어났다. 1919년 8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한 이후 고향인 남원지방을 중심으로 조직활동을 벌렸다. 대동단의 조직 확대를 위해 남원군 내에 청년단(靑年團)을 조직하고 단원(團員)의 모집에 힘썼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전협보(全協普), 최익환(崔益煥) 등이 조선민족(朝鮮民族)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서, 본부를 서울에 두고 전국 각처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또 이들은 당시 사회 각 층을 황족(皇族) · 벼슬아치 · 유림(儒林) · 종교(宗敎) · 교육(敎育) · 상공(商工) · 노동(勞動) · 청년(靑年) · 군인(軍人) · 부인(婦人) · 지역 구역(地域 區域) 등의 11개 단(團)으로 분류하고, 이와같은 사회 각층의 인사들을 통일 · 종합함으로써 범국민적 조직을 구상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그는 동지 김재구(金在九) · 강경진(姜景鎭)등과 함께 많은 동지를 포섭하였고, 또 자금모금 활동도 전개했다.
그런데 1919년 11월 대동단 본부가 주도한 의친왕(義親王)의 상해(上海) 망명계획이 일경(日警)에 발각됨으로써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어 동단의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 발각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는 1920년 3월 15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1951년 1월 21일 졸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그리고 1990년 12월 26일에는 훈장증, 1993년 6월 1일에는 국가유공자증을 받았다. 배위(配位)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영두(永斗)의 따님이며 아들은 상윤(相鈗 系旭淵 后), 상훤(相煊)이다.
公의 墓는 南原市 巳梅面 桂洞 案山麓生峙道龍同 岩石下癸坐이고 配位 金海 金氏墓는 大栗里 전石峙大路下五也洞艮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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