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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
참의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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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2-11-29 (목) 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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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0 ㆍ조회: 1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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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IP: 218.xxx.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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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韓磌)신도비에 잘못 기록된글
한전(韓磌)신도비에 잘못 기록된글 을 후손에게 어찌 유록을 전할꼬..... 虛白亭文集卷之四 (홍귀달(洪貴達)1438년(세종20)~1504년(연산군 10) 刑曹判書兼世子左賓客成公墓碑銘 성건신도비(成健神道碑)幷序가 기록 되어 있는데 公娶戶曹叅議[韓磌]女。亦賢婦人。正所謂兩美合也。而無後。可謂天道有知乎。後以次兄之子景溫。奉喪祭 공은 호조참의(戶曹叅議) 한전(韓磌)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후손이 없어서 둘째형의 아들인 경온(景溫)으로 후사(後嗣)를 삼았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에 위치한 한전(韓磌) 의 신도비에 보면 吏判成健文(이판성건문)쓰여져 있으니 어찌할꼬? 사위가 성건(成健)인데, 성건문(成健文)이라고 하였으니 잘못 기록된 글을 바로 잡아야 되지않을까? 여기에서 보면 세종시대에 감사를 역임 하셨지만 수(守)직(임시)직으로 근무 하셨음을 알수있고! 2품직이 될수 없어 후에 사위인 成健(성건) 死後에 碑銘에도 호조참의(戶曹叅議) 한전(韓磌)의 딸에게 장가들었다고, 기록 되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신도비에 후손이 壬辰亂(임진란)에 흩어져 살아가게 되었다고? 1504년갑자사화甲子士禍(페비윤씨:연산군생모)사건때에 모든 사림(선비)들이 폭정을 견디지못할 때, 14세 충인(忠仁)할아버지께서는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변군(邊郡:가족이흩어짐)으로 이사하여 살게하였으며, 모든책임을지시고 사위인 신수근앞에서 돌아가시게 됩니다. 중종반정(中宗反正)때에 신원이 복관이 되면서 소위장군부군 16세 곤(昭威將軍府軍諱鯤)자손록용(子孫錄用:대를이음)의 명(明)을 내리었다. 전국에 흩어져 참의공파후손들이 살아가게되는 동기입니다. 15세 韓 訓(한훈)承旨公 세조5년(1459)~연산 5년(1499년) 1월24일(갑신) 조부(祖父)의 휘(諱)는 전(磌)이시니, 통정호조참의(通政戶曹叅議)이시고, 기록되어있으니, 嘉靖癸亥四月 孤哀子胤明追錄梗槪以誌 가정계해(嘉靖癸亥1563년) 四月 고애자(孤哀子:상중에아들을칭하는말) 윤명(胤明)은 추록(追錄:기록)하여 지(誌)를 쓴다. 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정3품직 통정호조참의(通政戶曹叅議)를 종2품직(監司)로 올려 드릴수가 없는것이죠... *세공(世功):朝鮮王朝實錄 세조3년 참의(叅議)한전(韓磌)원종공신2등으로 녹훈한다 *한윤명(韓胤明): 마음을 물처럼 잔잔하고 거울처럼 맑게 하고자 하여 호를 형암(炯菴)이라고 하였다. 선조 임금의 왕손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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