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신(훈)록(功臣(勳)錄)

 
서평군 한숙창(西平君 韓叔昌 : 成宗 10年(1479) ~ 中宗 32年(153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字는 熙卿(희경)이니 서성군 익(西城君 : 翊)의 아들로 서릉부원군 장간공(西陸府院君 莊簡公 : 致禮)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증 정부인 순천 박씨(順天 朴氏)니 판중추부사 평양군(平陽君 : 仲善)의 따님이다. 음보로 선전관이 되고 사복시 주부 감찰을 거쳐 공조좌랑, 호조정랑, 제용감 첨정, 내섬시 부정등을 역임하였다. 중종 1년(1506) 외삼촌 박원종(朴元宗)과 더불어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에 녹훈되고 절충장군에 올랐다.
 이듬해 호조참의에 배명(拜命)되었는데 이때 나이 29이다. 그 뒤 돈녕부 도정 정주(定州), 양주(楊州), 광주(廣州), 파주(坡州), 여주(驪州)등 5개 주의 목사(牧使)와 부평도호부사(富平 都護府使) 등을 역임하고 동왕 30년(1535) 가선대부에 승자(陞資)되어 장례원 판결사에 배명하고 서평군(西平君)으로 봉하여졌다.
 공은 화려한 귀족의 아들로 생장(生長)하였으나 교만하거나 사치스러운 태도가 없었고 성품(性品)이 활달하고 능숙(能熟)하여 도량과 식견, 재간과 능력이 있어서 여러 대읍(大邑)의 수령을 역임하면서 백성들에게 은애로써 대하고 부하 이속들을 엄격하게 부리면서 매사를 사리에 맞게 처리하되 관후(寬厚)하고 인자(仁滋)하게 다스렸으므로 가는 곳마다 좋은 치적을 올려 치민(治民)에 유능한 수령 (守令)으로 칭송이 자자하였고 백성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고 추모(追慕)하였다.
 公은 용모가 수려 (秀麗)하고 수염이 그림같이 아름다우며 언행(言行)이 얌전하고 우아(優雅)한 모습이 누구나 모두 경애 (敬愛)하고 사모하였다. 어머니의 상(喪)을 당하여 집상(執喪)하는데 지나치게 극진하여 건강을 해치고 병이 되어 거상(居喪) 중에 졸하니 부음(計音)을 접한 왕은 자헌대부 공조판서로 증직하고, 장사(葬事)를 관비(官庇 : 관에서 갖춤)로 할것을 하명하며 그 뒤 부조지전(不조之典 : 나라에 공훈이 큰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모시고 제사 지내게 하는 특전)의 특전을 내렸다. 배위는 정부인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환성군(歡城君 :  澄)의 따님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생육(生育)하시니 장남은 서양군(西陽君 : 慈)이고 2남은 신천공(信川公 : 蕙)이며 3남은 충의공(忠毅公 : 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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