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록(孝行錄)

 
심재 한원식(心齋 韓元植 : 高宗 30年(1893) ∼ (1965) 31世)
 공(公)의 휘(諱)는 원식(元植)이요 자(字)는 공선(公善), 호(號)는 심재(心齋)이다. 성택(聖澤)의 둘째 아들이고 백능(百能)의 손자이며 문정공 계희(文靖公 繼禧)의 17대 손이다.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 李氏) 로 종화(鐘和)의 따님이다. 공은 고종(高宗) 30년(1893) 6월 30일생이다. 천성(天性)이 학업(學業)을 좋아하더니 회당 윤응선(晦堂 尹應善) 선생의 문하(門下)에서 소학(小學 : 宋나라 劉子澄이 朱熹의 가르침을 받아 지은 아동요 敎訓書). 사서(四書 : 論語, 孟子, 中庸, 大學)을 익혀 삼경 (三經 : 詩經, 書經, 周易)에 능통(能通)하였다.
 사친애경(事親愛敬)하고 안빈수도(安貧修道)하니 향리인(鄕里人)이 우러러 봤다. 왜정시(倭政時) 강제단발령(强制斷髮令)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유발(有髮)하고 창씨개명(創氏改名)에도 불복(不服)하고 신사참배(神社參拜)도 반대해온 꿋꿋한 표상(表像)이 되었다.
 공의 덕망(德望)과 학식(學識)이 고매(高邁)함에 원근(遠近)의 문하생(門下生)이 다수(多數)였다.
 일찍이 대부인 경주 이씨(大夫人 慶州 李氏)의 상(喪)을 당함에 묘측(墓側)에 여막(廬幕)을 짓고 애읍삼년(哀泣三年)하니 문묘유림(文廟儒林)들이 포창(褒彰)하였으며 향리(鄕里)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1965년 12월 25일 졸하였다.
 배위(配位) 천안 전씨(天安 全氏)는 달호(達鎬)의 따님이며 아들은 성환(晟煥), 정환(珽煥)이다.
 공의 배위(配位) 천안 전씨(天安 全氏)는 1977년 7월 15일 졸하니 미양면 서변리 신좌(薇陽面 西邊里 辛坐)에 합조(合兆)하였다.
 位置 : 京畿道 安城郡 薇陽面 西邊里 辛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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