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행록(孝行錄)

 
절제사공 한몽룡(節制使公 韓夢龍)
 公의 諱는 몽룡(夢龍)이요 字는 견선(見宣) (현선으로도 부름)이니 임란(壬辰倭亂)때 수사(水使) 최강(崔강)과 더블어 창녕(昌寧)과 마산포(馬山浦)에서 왜적(倭賊)을 토벌하고 의병장(義兵將) 곽재우(郭再祐)와 같이 창녕 화왕성(昌寧 火旺城)을 지킨 종묘봉사(宗廟奉事) 계(誡)의 아들이요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한림(翰林)을 거친 여철(汝哲)의 손자이다.
 또한 문한(文翰)으로 명성(明聲)이 높아 임천서원(臨川書院)에 배향된 조은공 몽삼(釣隱公 夢參)의 형님으로 公은 선대(先代)로부터 학행과 효행이 투철한 가문(家門)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심(孝心)이 지극하여 부모상(父母喪)을 당하여도 예도(禮道)로써 다하고 6년동안 시묘(侍墓))하였다.
 부모 생존시에는 아침저녁 문안을 게을리 한 적 없고 혹 출타할 때에도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어버이에게 다녀온 사실을 아뢰어 궁금증이 없도록 하였으니 이는 출필고반필면(出必告反必面)했다는 옛사람의 효행(孝行)을 실천한 표상(表像)이라 할 것이다.
 公이 난세(亂世)에 당하여 병서(兵書)와 궁마(弓馬)에 전력(專力)하여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결성(結城) 진도(珍島) 영원(寧遠)의 현감 군수(縣監 郡守)를 지냈고 영원전(寧遠鎭)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을 겸직 하면서 청백(淸白)으로 선정(善政)하니 고을마다 송덕비(頌德碑)를 세운 바 있다. 公이 壽68하고 선조을유(宣祖乙酉 : 1645) 5월 13일 별세(別世)하여 선령유곡선영자좌(宣寧楡谷先塋子坐)에 안장하고 아우 몽삼(夢參)이 비문을 지어 묘비(墓碑)를 세웠다.
 公의 배위(配位) 진양 강씨(晋陽 姜氏)는 선령유곡선영하(宣寧楡谷先塋下)에 公과 雙兆요 함안 조씨(咸安 趙氏)는 公과 上下兆이고 평택 임씨(平澤 林氏)는 오부득고축좌(漁父得谷丑坐)에 그리고 초계정씨(草溪鄭氏)는 하곡리영봉산오좌(荷谷里靈鳳山午坐)이다. 아들은 4형제로 長이 宣敎郞 時憲이오 次는 從仕郞 時俊이오 次는 時達, 時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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