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공 한만유(判事公 韓晩裕 : 영조 22년(1746)~순조 12년(1812) 26世)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여성(汝成), 호는 성암(誠菴), 판사공(判事公 : 光會)의 아들로 청산공 증 찬성(靑山公 贈 贊成 : 師德)의 손자이며 어머니 정경부인 동래 정씨(東萊 鄭氏)는 봉사공(奉事公 : 錫敷)의 따님이다. 영조 44년(1768)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동왕 49년(177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정조 2년(1778) 정언(正言)이 되고 이듬 해 도당록(都堂錄)에 올랐으며 이어 사헌부 지평(持平), 은산현감(殷山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동왕 17년 사간원 대사간(大司諫), 승정원 승지(承旨), 이조참의(參議) 등을 지냈다. 동왕21년 예방승지(禮房),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순조 3년(1803) 형조판서(判書)가 된 후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등을 거쳐 동왕 4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동왕 5년 대왕대비(大王大妃 :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국장도감 제조(國葬都監 提調)가 되고, 숭정대부(崇政)로 가자된 뒤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병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두루 지냈다. 동왕 7년 숭록대부(崇綠)로 가자 되어서도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병조판서, 예조판서, 예문관 제학(藝文館 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배위 정경부인 풍양 조씨(貞敬夫人 豊襄 趙氏)는 대사헌공(大司憲公 : 載洪)의 따님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생하니 장남은 참봉공(參奉公 : 用弼)이고 차는 국언공(國彦公 : 用彬)이다.
공은 정조 17년(1793) 양절공(襄節公 : 確)의 신도비 대석(神道碑 臺石)을 보수(補修)할 때 발기인(發起人)의 한 분으로서 많은 노력과 성의를 보인 바 있고 또 순조 4년(1804) 사숙공묘소중심수호(思肅公墓所重尋守護)할 때 발기인의 한 분이요 사숙공 묘갈명(墓碣銘)을 지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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