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공 한정교(孝靖公 韓正敎 : 순조 10년(1810)~고종 5년(1868) 29세)
조선 말기의 문신. 자는 순칠(淳七), 대사성공(大司成公 : 兢履)의 아들로 판관공 증 찬성 경리(判官公 贈 贊成 景履)에게 계후입양(系后入養)되니 익정공(翼貞公 : 用龜)의 손자가 된다.
공은 순조 17년(1817) 구촌숙(九寸叔)인 경리(景履)가 무후로 졸하니 공의 나이 불과(不過) 8살의 어린 나이에 입양하여 집상(執喪)하게 되었다. 또 상기가 지나자 11살 때 양어머니 증 정경부인 보성 오씨(寶城 吳氏)가 졸하였고 이듬해 조비(祖비) 정경부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가 졸하였으며 19살 때 조고(祖考)인 익정공이 졸하니 공은 20세 미만에 네 분의 상을 당하였으나 그 집상하는 예절(禮節)이 매우 완벽(完璧)하여 예법(禮法)에 어긋남이 없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였고 자품(姿品)이 온후(溫厚)하며 성행(性行)이 단결(端潔)하고 학문(學文)에만 열중(熱中)하니 익정공이 대단히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 헌종 10년(1844)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음보(蔭補)로 고위관직을 역임한 바 있어 이듬 해 대사간(大司諫), 동왕 14년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승진되었고, 정사 이계조(正使 李啓朝)를 따라 청나라에 다녀왔다.
철종 2년(1851) 이조참판, 동왕 5년 충청도 관찰사, 동왕 7년 다시 이조참판, 동왕 8년 형조참판, 동왕 9년 다시 이조참판, 동왕 10년 대사간으로 옮겼고 정경(正卿 : 상대부중에서 선발되어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 조선조에 정2품 이상의 관직)에 뽑혔다. 동왕 13년 2월 예조판서, 10월에 경기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고종 2년(1865) 사헌부 대사헌(大司憲), 이듬 해 의정부 좌참찬(左參贊),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한성부 판윤(漢城府 判尹) 등을 역임하였다. 고종 5년(1868)에 졸하니 향년 59세이다. 왕은 공의 부음을 듣고 예관을 파견하여 치제(致祭)하였다. 시호는 효성이 지극하였다 하여 효정(孝靖)이라 내렸다.
배위 정경부인 우봉 이씨(牛峰 李氏)는 이조판서 문간공(文簡公 : 光文)의 따님이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현령공 창석(昌錫)을 계후입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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