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판공 한계윤(參判公 韓繼胤 : 1415 ~ 1475 14世)  
公의 諱는 계윤(繼胤)이요 號는 유암(柳岩)이다. 公이 태종(太宗) 5년(1415)에 탄생(誕生)하니 고위(考位)는 함길도 도관찰사 겸 함흥부윤(咸吉道 都觀察使 兼 咸興府尹) 혜(惠)요 비위(비位 : 어머니)성주 이씨(星州 李氏)는 동지총제(同知摠制) 수(穗)의 따님이요 계비(繼비) 창녕 성씨(昌寧 成氏)는 판중추 양혜공(判中樞 襄惠公) 따님이다. 조고(祖考)는 태종조(太宗朝)에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문간공(文簡公) 상경(尙敬)이다. 公의 配位 慶州 崔氏는 대사헌(大司憲) 문손(文孫)의 따님이다.
公이 일찍이 공신(功臣)의 후예(後裔)로 문음출사(門蔭出任)하여 주부(主簿) 때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책록(冊錄)되었으며 통훈대부 천녕현감(通訓大夫 川寧縣監)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쳐 가선대부 검교참판 겸 경연 참찬관(嘉善大夫 檢校 參判 兼 經筵 參贊官)에 이르렀다. 公이 성종(成宗) 6년(1475) 5월 4일 별세(別世)하니 수(壽)가 61이요 子女는 二男 三女로 長男은 형조정랑(刑曹正郞) 준(峻)이요 차(次)는 通任郞) 우(우)이다.
公의 유택(幽宅)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오금리(廣州郡 中垈面 梧琴里 : 現 서울 松坡區 梧琴洞) 건좌원(乾坐原)이었고 배위(配位)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梧琴里 公墓白虎合局이었으나 現世에 와서 도시 확장계획에 의하여 1971년 4월 2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파곡 인좌원(南楊州市 榛接邑 金谷里 坡谷 寅坐原)에 兩位合폄으로 면봉(緬奉)하고 立標하였다.  
시향(時享)은 음 10월 3일이다.
公이 별세(別世) 후 500여년인 1989년 국추절(菊秋節)에 後孫이 성금(誠金)을 모아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다. 비문(碑文)은 문화공보부 서기관(文化公報部 書記官)을 지낸 공의 十六代孫 重錫이 짓고 文學博士 相甲(傍孫)이 썼으며 參判公 宗中이 세운 것이다. 公을 爲한 齋室은 文簡公 祠堂境外에 있고 26平型 煉瓦造 平家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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