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록(駙馬錄)

 
청평위 한기(淸平尉 韓 紀 : 17世) 
 공의 諱는 기(紀)요 字는 원방(元方)이다. 성종(成宗) 22년(1491)에 탄생하니 아버지는 형조판서(刑曹判書)하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된 효헌공(孝憲公) 형윤(亨允)이요 조부(祖父)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증직(贈職)된 절(절)이다. 公이 11세에 성종(成宗임금)의 딸 10녀인 정혜옹주(靜惠翁主)와 혼인하여 청평위(淸平尉)가 되었다. 1504년 연산군(燕山君)의 난정(亂政)으로 일어난  갑자사화(甲子士禍)때 경기도 안산(京畿道 安山)에 유배(流配)되고 배위(配位)인 정혜옹주(靜惠翁主)는 황해도 백천(黃海道 白川)으로 유배(流配)되었다.
 公은 천성(天性)이 인후(仁厚)하고 덕량(德量)이 넓었으나 강직(剛直)한 성격(性格)에 직언(直言)을 좋아하여 처남(妻男)인 연산군(燕山君)과 조화(調和)를 이루지 못한 것이 유배(流配 : 귀양)된 연유(緣由)가 된 것으로 전하여 온다.
 중종반정(中宗反正) 후에 봉작(封爵) 이 복구(復舊)되었고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 1등에 통헌대부(通憲大夫)의 가자(加資)가 내렸다. 公은 王室의 척분(戚分)이나 지위(地位)와는 달리 매우 검소(儉素)한 생활(아버지가 淸白吏임)을 하였으며 총명박식(聰明博識)하고 담설(談設)을 잘하였다. 슬하(膝下)에 4男 2女가 있다.
 公이 명종(明宗) 14년(1559)에 수(壽) 69하고 별세(別世)하여 나라에서 정무(政務)를 휴무하고 부의(賻儀)를 내렸다.
 배위(配位) 정혜옹주(靜惠翁主)는 成宗의 第10女로 王室에서 태어났으되 검소(儉素)한 집안 살림을 맡아했으며 王女 이면서도 서민(庶民)과 같이 소박한 몸가짐으로 칭송을 받았고 傳한다. 사후(死後)에 公과 합폄(合폄)으로 양주군 해동촌(楊州郡 海東村 : 지금의 서울 창동) 선영하(先塋下)에 安葬되었다가 도시확장으로 1971년 3월 청명절(淸明節)에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高陽市 大慈洞) 山 52-2에 면봉(緬奉)하고 묘비(墓碑)도 개수(改竪)하였다. 비문(碑文)은 여성위(礪城尉) 송 인(宋 寅)이 지은 것이다. 시향(時享)은 음력 10월 7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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