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록(駙馬錄)

 
청원위 한경록(淸原尉 韓景祿 : 中宗 15年(1520) ∼ 宣祖 22年(1589) 18世)  
공은 중종(中宗)의 부마(駙馬 : 임금의사위)이다.  자는 중수(中綏), 부사공(府使公 : 承權) 증 영의정의 아들로 장사랑공(將仕郞公 繼金) 증 판중추부사의 손자이며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이니 창녕군(昌寧君 : 繼商)의 따님이다. 공은 권문세가(權門勢家 : 권세있는 집안)의 자제(子弟)로서 총명(聰明)과 수발(秀拔 : 남보다 뛰어남)을 겸한 신동(神童)으로 소문이 자자하니 공을 사위로 탐내는 세도가(勢道家) 또한 적지 않았다.
이때 중종이 즉위 후에 여러가지 재난과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성장(成長)하는 공주(公主)와 옹주(翁主)가 11자매(姉妹)나 되니 왕궁(王宮)에서는 의빈물색(儀賓物色 : 임금의 사위를 듣고 보아 고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의혜공주(懿惠公主)의 배필(配匹 : 배우)로서 물망(物望 :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명망)에 오른 수많은 후보(候補) 가운데서 문벌(門閥 :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지위)과 덕망(德望 : 여러 가지를 다 갖추어 완전함)을 겸전한 점으로서는 공에게 비길 인물(人物)은 없었다. 드디어 영예(榮譽 : 영광스러운)로운 국서(國壻 : 임금의 사위)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뛰어난 예지(叡智 : 사리에 통하여 깊고 밝은 슬기)와 덕망(德望), 또 단정(端正 : 단아하고 정대함)한 용의(容儀 : 예의에 맞는 기거동작)와 헌칠한 풍채(風采 : 인품)때문에 충천(衝天 : 높이 솟아 하늘에 부딛침)하는 웅지(雄志 : 웅대한 뜻)를 뜻대로 펴지 못하고 국서로 평탄(平坦 : 평지)한 생애(生涯 : 일생동안)를 누린 분이다.
명종 2년(1547)에 추성협익정난위사공신(推誠協翼定難衛社功臣) 성록대부(成祿大夫)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으로 삼았다. 그 뒤 선조 10년(1577) 공신호는 전원이 삭훈(削勳)되었다.
선조 26년(1593) 9월 7일 임진란 중(壬辰亂中)에 별세하니 선조는 예관(禮官)을 파견하여 치제(致祭)하였다.
배위 의혜공주(懿惠公主)는 중종(中宗)의 2녀요 문정왕후 윤씨(文正王后 尹氏)의 소생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생육(生育)하니 장남은 판관공 의(判官公 의)이고, 2남은 도사공 완(都事公 浣)이며, 3남은 부사공 순(府事公 淳)으로 증 호조판서이다.

 位置 : 의정부시 호원동 루원원도봉산

 歲享日 : 음 1월 1일, 2월 2일, 9월 6일, 추석,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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