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록(淸白錄)

 
좌윤공 한덕필(左尹公 韓德弼 : 肅宗 22年(1696) ~ 英祖 47年(1771) 24世)
 공은 조선 후기(後期)의 문신이다. 휘(諱)는 덕필(德弼)이요 자(字)는 상지(相之)이며 호(號)는 춘귀당(春歸堂)이다. 월악공 지(月嶽公 祉)의 큰아들이며 시와공 태동(是窩公 泰東)의 손자이다. 공은 천성(天性)이 청백(淸白)함을 중(重)히 여겼다.
 숙종(肅宗) 42년(1716)에 음사(蔭仕)로 장릉 참봉 사옹원 주부(長陸 參奉 司甕院 主簿)를 거쳐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을 지내고 영조(英祖) 4년(1728)에 예안현감(禮安縣監), 동왕 34년(1734)에 평양부 서윤(平壞府 庶尹) 그 후 삼척부사(三陟府使), 인천부사(仁川府使) 등을 지내다 영조 22년(1746)에 형조참의(形曹參議)에 올랐다.
 다음 해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1748년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나갔다. 공은 가는 곳마다 선정(善政)을 베푸니 그 근원은 청백(淸白)이 맥(脈)을 이었다. 공의 재국(才局)이 청백(淸白)함으로 세상 사람이 중시(重視)하여 대신(大臣)들이 추천하고 성주(聖主)가 포창(褒彰)하니 명성(名聲)이 진동(振動)하여 세인(世人)의 이목(耳目)에 빛났도다.
 이러므로 동왕 30년(1754)에 한성좌윤(漢城左尹)에 오르고 경기수사(京畿水使)를 거쳐동왕 34년(1769) 홍주목사(洪州牧使)에 오르고 영조 47년(1771) 부총관(副摠管)으로 있던 중 12월 7일 공주효가(公州孝家)에서 졸하니 수(壽) 76이다. 공은 성산현감 재임시(星山縣監 在任時, 英祖 13年, 1737)에 구휼선정(救恤善政)으로 주내사십방민(州內四十坊民)이 입비송덕(立碑頌德) 사모(思慕)하였다. 또 16읍(色) 수령(守令)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배위(配位) 정부인 안동 권씨(貞夫人 安東 權氏)는 좌참찬 업(左參贊 업)의 따님이며 아들은 판관 경(判官 警)이다.
 공은 영조(英祖) 47년(1771) 12월 7일 졸하니 무성산 중영천 해좌(武城山 中靈泉 亥坐)에 안장(安葬)하였다.
 배 정부인 안동 권씨(配 貞夫人 安東 權氏)는 영조 26년(1750) 10월 29일 졸하니 공과 합조(合兆)였는데 1979년 4월 10일 용성산 선영하(龍城山 先塋下)로 이장(移葬)하였으며 묘비(墓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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