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행정려록(烈行旌閭錄)

 
여암공 한영원 배 밀양 박기양(黎菴公 韓永源 配 密陽 朴岐陽 : 1877∼1944. 27世)
여암공 영원(黎菴公 永源)의 자(字)는 영서(永瑞), 호(號)는 여암(黎菴)이다. 만당공 석진(滿堂公 錫辰)의 아들이고 동헌공 응성(東軒公 應聖)의 13대 손이다. 공의 어머니는 월성 김씨(月城 金氏)로 진하(振河)의 따님이다.
공은 고종(高宗) 7년(1870) 3월 12일생으로 문학(文學)에 저명(著名)하였으며 1944년 1월 17일에 졸하였다. 배위(配位) 밀양 박기양(密陽 朴岐陽)은 수신(壽信)의 따님으로 고종 14년(1877) 3월 8일생이다. 시아버지(媤父)가 산수(傘壽)에 갑자기 등창(瘡)을 앓게 되었다. 연로(年老)한 탓도 있겠지만 환부(患部)의 아픔은 말이 아니었다. 마침내 종기가 곪아 터지고 한 여름에 구더기가 나니 시어머니(媤母) 가 탱자나무 침으로 담배씨 같은 유충(幼蟲)을 하나 하나 후벼내니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보던 며느리 밀양 박기양(密陽 朴岐陽)은 30대 새색시로 시부의 등창을 한달이 넘게 하루에 두세번씩 그 속에 있는 농즙(膿汁)과 농근(膿根)을 빨아내어 거기에 누룩나무 뿌리를 씹어 넣어 정성껏 간호(看護)하여 완쾌하였다. 그러나 며느리는 입속에 헤진 상처에 농액(膿液)이 침투함에 구강(口腔)이 부어 고생(苦生)을 많이 하였다.
이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박씨 부인의 이와 같은 효행(孝行)을 칭송(稱頌)했으며 관아(官衙)에서는 이를 기려 비단과 폐(弊)를 내려 박씨 부인의 효행(孝行)을 포상(褒賞)하였다. 1944년 1월 27일 68세로 졸하였다.아들은 찬욱(璨勖), 찬규(璨圭)이다. 묘(墓)는 경주시 북군 상동 후산 자좌(慶州市 北軍 上洞 後山 子坐) 공묘(公墓)의 동원 해좌(同原 亥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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