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협소재공 한효상(협素齋公 韓孝祥 : 명종 20년(1565)~선조 38년(1605) 19세)
공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다. 휘(諱)는 효상(孝祥)이요 자는 경휴(景休), 호는 협소재(협素齋)이다. 증 참판공 천뢰(贈 參判公 天賚)의 셋째 아들이고 별제공 극공(別提公 克恭)의 손자이다. 문정공 계희(文靖公 繼禧)의 5대손이다. 어머니는 증 정부인 원주 변씨(贈 貞夫人 原州 邊氏)로 병사 명윤(兵使 明胤)의 따님이다.
공은 명종 20년(1565) 7월 9일 생이다. 일찍 우계 선생(牛溪 先生)의 문하에서 수도(修道)를 닦은 선비가 많으나 유독 공께서 강마도의(講磨道義)하고 독학역행(篤學力行)하니 문장(文章)이 일취(日就)하여 서법(書法)이 절륜(絶倫)하여 우계선생(牛溪先生)이 증시(贈試)에 이르되 유여종왕필(有餘鍾王筆)이요 전심선후천지구(專心先後天之句)라 하였다.선조 23년(1590)중사마생원(中司馬生員)에 급제 하였다. 선조말년(宣祖末年)에 우계선생이 졸 후 간인(奸人)들의 무고(誣告)로 죄안(罪安)에 오름에 공께서 홀로 항소(抗疏)하였으나 오히려 왕이 과거정지(科擧停止)의 명(命)을 내림에 종차이후(從次以後)로 불사거업(不事擧業)하다 선조30년(1597)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이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왜적과 싸워 대승함에 도원수 권율(都元帥 權栗)이 이에 전승비(戰勝碑)를 세우니 명필예가(名筆藝家)인 공으로 하여금 비문(碑文)을 쓰게 하였다.
남원에 있는 유총병송공비(劉摠兵頌功碑)는 바로 이것이다. 선조 38년(1605) 7월 5일 41세 졸이다. 유고(遺稿)가 있으나 병화(兵禍)로 없어지고 시서(詩書) 두 권이 전해지고 있다. 배위 여산 송씨(礪山 松氏)는 감찰 부흥(監察 復興)의 따님이고 아들은 도사 필진(都事 必震), 교위 필항(校尉 必恒), 필익(必益, 无后), 필승(必升)이다. 공과 배위 여산 송씨의 합조묘이다.
묘 :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계신리 세향일 : 음)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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