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행록(學行錄)

 
승지공 한구(承旨公 韓 構 : 인조 14년(1636)~숙종 41년(1715))
조선 중기의 문신. 서예가. 자는 긍세(肯世), 호는 안소당(安素堂), 정유공 석원(廷臾公 碩元)의 아들로 청원위 경록(淸原尉 景祿)의 5대손이며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 柳氏)니 진사공 형(進士公 형)의 따님이다. 효종 8년(1657) 진사시에 합격하여 순능참봉(順陵參奉)으로 있다가 숙종 1년(1675) 증광문과 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지평, 장령, 정언, 헌납, 집의, 안주목사 등을 거쳐 동왕 10년 승지에 올랐다. 동왕 15년 민비(閔妃)가 폐위되고 남인(南人)이 득세한 뒤 아들 휘우공 중혁(輝羽公 重赫)이 김춘택(金春澤)과 함께 민비 복위를 꾀하다가 동왕 20년 투옥되자 이에 연좌(連坐 : 한사람 죄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범죄에 관련됨)되어 변방(邊方 : 시골변두리)에 유배되었다.
5년뒤 사면되어 유배지에서 풀려났으며 동왕 41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시(詩)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예(書藝)도 뛰어나 공이 졸한 뒤인 정조 6년(1782) 평안도 관찰사 서호수(徐浩修)가 왕명에 따라 공의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삼아 평양감영에서 8만여자의 활자(活字)를만들어 ‘한구자(韓構字)’라 이름하여 규장각에 소장하였고 우의정 김석주(金錫胄) 일족의 문집인 《잠곡집(潛谷集)》, 《낙전당집(樂全堂集)》, 《동강집(東江集)》 등이 모두 이 활자로 간행되었다.
배위는 정부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니 진(瑨)의 따님이다. 슬하에 5남 2녀를 생육(生育)하니 장남은 휘우공 중혁(輝羽公 重赫)이고 2남은 진사공 중엽(進使公 重燁)이며 3남은 휘시공 중념(輝時公 重념), 4남은 중집(重집), 5남은 중선(重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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