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공 한언륜(牧使公 韓彦倫 : ?∼? 14世)
공은 조선 중기(中期)의 문신이다. 휘(諱)는 언륜(彦倫)이며 이랑공 서봉(吏郞公 瑞鳳)의 아들이고 청성군 승순(淸城君 承舜)의 손자이다.  공은 두뇌(頭腦)가 명석(明晳)하여 일 처리(處理)를 잘 하였다.
중종(中宗)의 어명(御命)으로 삼남안찰사(三南按察使)가 되어 충청도 탐색순행 중(忠淸道 探索巡行 中)에 기묘사화(己卯士禍 : 조선조 中宗 14年(1519) 洪景舟, 南 哀, 沈 貞 등 詞章派의 勳舊宰相이 理想政治를 주장하던 趙光祖, 金 淨 등 젊은 新進派를 몰아낸 事件)로 화록지중(禍錄之中)에 인형(姻兄)인  영상 허종(領相 許琮)의 음호(蔭護)로 간득면탈(艱得免脫)하였다. 이에 앞서 연대미상(年代未詳)이나 한성판관(漢城判官)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여주목사(驪州牧使)를 지낸 바 있다.
공은 기묘사화(己卯士禍) 후 가솔(家率)을 이끌고 시조 양위공 복거지 청주(始祖 襄威公 卜居地 淸州)로 은거(隱居)하게 되었다.
배위(配位)는 숙부인 능성 구씨(淑夫人 綾城 具氏)로 능성군 문신(綾城君 文信)의 따님이다.
아들은 내금위 민(內禁衛 민)과 감무 무(監務 懋)이다.
목사공 언륜(牧使公 彦倫)과 배위 숙부인 능성 구씨(淑夫人 綾城 具氏)의 묘와 아들 내금위 민(內禁衛 민)과 배위 정부인 성씨(貞夫人 姓氏 未詳), 감무 무(監務 懋)와 배위 숙인 고성 이씨(配位 淑人 固城 李氏)의 단(壇)이 청주시 수곡동(淸州市 秀谷洞)에 있었는데 시(市)의 개발 정책(開發政策)으로 1992년 3월 남일면 송암리(南一面 松岩里)에 이설(移設)하고 음력 10월 10일에 세일제를 봉행(歲一祭 奉行)하고 있다.
 
位置 : 忠淸北道 淸原郡 南一面 松岩里 山 18-1
歲享日 : 陰 10月 1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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