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공 한준겸(文翼公 韓浚謙 : 明宗 12年(1557)~仁祖 5年(1627) 19世)
공(公)은 조선 중기(中期)의 문신이다. 휘(諱) 준겸(浚謙)이요 자(字)는 익지(益之)이고 호(號)는 유천(柳川)이다. 유음공 효윤(柳陰公 孝胤)의 셋째 아들이고 군수공 여필(郡守公 汝弼)의 손자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시정공 신 건(寺正公 申 健)의 따님이다. 공은 명종(明宗) 12년(1557) 한성(漢城)에서 태어났다. 선조(宣祖) 12년(1579) 생원시, 진사시에 모두 장원이었다.
선조 18년(1585) 태능 참봉(泰陵 參奉)에 제수되고 이듬 해 별시문과(別試文科)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이해 예문관 검열(藝文館 檢閱)이 되어 홍문록(弘文錄)에 오르고 문장(文章)으로 이름을 날렸다. 주서(注書), 봉교(奉敎), 전적(典籍)을 거쳐 1589년 금천현감(衿川縣監)이 되었는데 선조가 그에게 노모가 있음을 알고 사가독서(賜暇讀書)하게 하였다.
이 해 겨울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발각되자, 정여립의 사위 이진길(李震吉)을 천거한 일로 연좌되어 옥에 갇혔다가 수개월 만에 풀려나 원주로 이사하였다. 1592년 다시 서용되어 예조정랑을 거쳐, 강원도도사, 사서를 역임하고 원주목사가 되어 유망민(流亡民)을 초집(招集), 진휼(軫恤 : 가없이 여겨 동정함)하는 데 힘썼다. 1595년 내직으로 지평, 필선,정언, 교리를 역임하고,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으며, 이어 검상(檢詳), 사인(舍人), 부응교, 사간, 집의를 지냈다. 1597년 좌부승지에 올라 명나라 제독 마귀(麻貴)를 도와 마초(馬草)와 병량(兵糧)의 보급에 힘썼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자 우승지, 경기감사, 대사성을 거쳐, 다음 해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정인홍(鄭仁弘)과의 알력으로 파직당하였다. 다음 해 병조참판을 거쳐, 내외의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1605년 호조판서에 특진되었고, 그뒤 대사헌, 한성부판윤 및 평안도와 함경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특히,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는 《소학》 · 《가례》 등의 책을 간행, 보급하여 학문을 진홍시켰다.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으로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전리방귀(田里放歸)되고, 1617년 충주에 부처(付處)되었으며, 1621년 여주에 양이(量移 : 刑을 減하여 가까운 곳으로 옮김)되었다.
이 해 오랑캐 침입의 위험이 있자 이에 대비할 적임자로 뽑혀 유배지에서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오도도원수(五道都元帥)가 되어 국경수비에 힘썼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공의 딸이 인열왕후(仁烈王后)로 책봉되자 보국숭록대부영돈녕부사서평부원군(輔國崇綠大夫領敦寧府事西平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공주에 호종, 돌아와 지 춘추관사(知 春秋館事)로  《광해군일기》 편찬에 참여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배위대장(陪衛大將)으로서 왕자를 전주(全州)에 시종하였다. 예학(禮學)과 국가의 고사(故事)에 밝았다. 공은 인조(仁祖) 5년(1627) 7월 17일 71세로 졸하니 부음(訃音)이 전해지자 임금이 슬퍼하여 3일간 조회를 보지 않고 왕세자(王世子)가 와서 조상했다. 증 영상(贈 領相)이며 시호(諡號)를 문익(文翼)라 내렸다. 함흥(咸興)의 문회서원(文會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저서(著書)로 《유천유고(柳川遺稿)》가 있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가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짓고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가 행장(行狀)을 짓고 관해 이민구(觀海 李敏求)가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 배위(配位) 회산부부인 창원 황씨(檜山府夫人 昌原 黃氏)는 좌랑 성(佐郞 珹)의 따님이고 아들은 좌윤 회일(左尹 會一) 소일(昭一)이다.
공의 따님 세 분 참판 여이징(參判 呂爾徵)의 배위(配位), 참판 정백창(參判 鄭百昌)의 배위(配位), 진원군 이세완(珍原君 李世完)의 배위(配位) 공의 측실(側室)과 같이 네 분이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도(江華島)가 함락(陷落)됨에 자결순절(自決殉節)하였다.
공은 인조 仁祖 5년(1627) 7월 17일에 졸하니 이 해 9월 임오(壬午)에 원주 음지촌(原州 陰地村) 경향(庚向) 언덕에 즉 선조(宣祖) 27년(1594) 8월 13일 졸한 배 회산부부인 창원 황씨(配 檜山府夫人 昌原 黃氏)묘에 입장(入葬) 합조(合兆)하였다. 뒤에 안산 대월리(安山 大月里)로 이천(移遷), 합조(合兆)하였다.
 
位置 : 京廳道 始興市 君子面 去毛里 上龍山 良坐
歲享日 : 陰 7월 17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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