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공 한치범(判書公 韓致範 : 1584~1651)
公의 諱 소(塑)요 字는 방서(邦瑞)요 초휘(初諱)는 치범(致範)이니 문과(文科) 급제(及第)하여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을 지낸 흥길(興吉)의 아들이요 사맹(司猛)을 지낸 건(楗)의 손자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학문에 정진하고 가사(家事)를 도와 둔거지(遁居地)에서 숨어 살았다. 그 연유(緣由)는 아버지가 선조(宣祖) 때 벼슬하다가 광해군(光海君)의 정사가 어지러워 영광(靈光)으로 낙향(落鄕) 때문이다. 公이 영민(英敏)하여 선현(先賢)의 학문(學問)을 익혀 명망(名望)이 사위(四圍)에 떨치니 오히려 학행(學行)이 앞서는 바 되었다.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갑자년(甲子)에 자헌대부 병조판서(資憲大夫 兵曹判書)에 올랐다.
公은 아름다운 미덕으로 믿음과 충성으로 군주(君主)에 은혜를 갚으면서 나라일에 힘쓰고 아래로는 물건(物件)을 아껴 쓰며 대중을 사랑하며 선(善)을 베풀면서 어두운 백성을 가르치고 혹 한가로운 때는 덕(德)이 있는 사람과 도의(道義)로써 친교하니 만년 (晩年)에는 벗을 따라 경남 사천(慶南 泗川)으로 낙향(落鄕)하여 여생(餘生)을 보내다가 효종(孝宗) 2년 10월 13일에 졸(卒)하니 향년(享年)이 68세이요 묘지(墓地)는 사천군 북면 구암리 강성곡(江城谷) 입오산(立午山) 병좌(內坐)이다.
배위(配位) 정부인 연안 차씨(貞夫人 延安 車氏)는 이조판서 천로(吏曹判書 天輅)의 따님이다. 효종(孝宗) 3년 임진(壬辰)에 졸(卒)하여 公과 합폄(合폄)이다.
公에게는 아들 三兄弟가 있으니 起世, 仁世, 吾世이다.
公이 경기도 광주 태생으로 아버지를 따라 영광 진석산(靈光 陳石山) 아래 둔거지(遁居地)를 거쳐 경남 사천(慶南 泗川)에 낙향(落鄕)하여 여생(餘生)을 마쳤으므로 이곳에 유적비(遺蹟碑)를 세워 公의 행적(行蹟)을 기리고 있다.
이 재실은 판서공(判書公 諱 致範) 이하 열위(列位)의 교훈(敎訓)과 덕행(德行)을 영모(永慕 : 오래도록 잊지 않고 사모함)하고자 후손이 뜻을 모아 길지(吉地)에 지은 재사(齋舍)이다. 1996년 봄에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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