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왕후(章順王后 1445~1461 15世)
장순왕후는 예종대왕비(睿宗大王妃)이다. 세조, 예종, 성종조(世祖, 睿宗, 成宗)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상당부원군 휘 명회(上黨府院君) (諱 明澮)의 따님이니 다음의 유사(遺事)를 실어 자세히 설명한다.
 
예종대왕비 장순왕후 유사 (睿宗大王妃 章順王后 遺事 )
예종(睿宗)은 장순, 안순(章順,安順), 두 왕후(王后)에 후궁(後宮)은 없고 2男 1女의 子女를 두었다. 章順王后 淸州 韓氏는 상당부원군 한명회(上黨府院君 韓明澮)의 셋째딸로 世宗 27年(檀紀 3778  西紀 1445) 1月 16日에 탄생(誕生)하였다. 世祖 6年(檀紀 3793   西紀 1460)에 16歲로 4年 年上인 世子 예종(睿宗)과 가례(家禮)를 올려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冊封)되고 다음해 12月에 인성대군(仁成大君)을 낳았다. 그러나 世祖 7年 12月 5日에 요서(夭逝)했다.
책문(冊文)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아 그대 한씨는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유하고 아름답고 정숙하여 종묘의 제사를 도울 만하므로 이제 효령대군 보(補)와 우의정으로 잉령치사(仍令致仕)한 이인손(李仁孫) 등을 보내 그대에게 책보(冊寶)를 주어서 왕세자빈으로 삼는다. 그대는 지아비를 경계하고 서로 도와서 궁중의 법도를 어기지 말고 더욱 왕업을 융성 하게 하라.” 그러나 세자빈에 책봉된지 1년 7개월 만인 1461년 世祖 7年 11월 30일 원손 仁成大君을 낳고 산후병으로 그해 12月 5日에 안 기(安 耆)의 집에서 눈을 감으니 열일곱의 어린 나이로 요서(夭逝했다.
王后의 소생은 1男 1女인데 男 仁成大君 기(冀)는 世祖 10年에 5歲로 요졸(夭卒)했다. 女 현숙공주(顯肅公主)는 王后가 요서(夭逝)하던 해에 출산(出産)하였는데 무사히 生長하여 풍천위 임광재(豊川尉 任光載)에게 下嫁했다.
王后는 成宗 3年(檀紀 3805  西紀 1472)에 세자빈(世子嬪)의 지위(地位)에서 王后로 추존(追尊)되고 章順의 시호(諡號)를 받았으며 신위(神位)는 종묘(宗廟)의 영녕전 서협 제구실(永寧殿 西夾 第九室)에 睿宗과 함께 배향(配享)되어 있다. 능(陵)은 京畿道 坡州郡 條里面 奉日川里에 있는 공릉(恭陵)으로  王后 홀로 안장(安葬)되어 있다.
 

장순왕후 시책문(章順王后 諡冊文)(번역문)

세조 8년 임오(檀紀 3795 · 西紀 1462) 2月 17日(譯文)
행의를 표창(表彰)하고 시호를 정하는 것은 군부(君父)의 지극한 정의(情誼)요 은혜로운 節目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것은 고금의 떳떳한 전장(典章)이니, 이에 책보(冊寶)를 드러내어 거행하고 이로써 유궁(幽宮 : 무덤)의 문호를 빛나게 하노라.
생각컨데, 너, 韓氏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이 저저(儲邸 : 세자의 저궁)에 들어와 매양 윗전의 안색을 살펴서 받들되 기쁘고 즐겁게 하였고 항상 아랫 사람을 거느림에 정숙하고 화목하였도다. 그 덕에 세자와 짝하여 여망(與望)을 밝혔으며 미듬인 소양(少陽 : 세자)의 항려(伉儷 : 배필)로서 상서로움이 동궁(東宮)의 안길에 서리어 모이게 하였고 大人(한씨의 친정 아버지를 가르킴)이 몽조(夢兆)로 점지받은 바에 화협(和協)되어 그 경사로움이 우리 종묘와 사직으로 돌아는 바 되었도다.
이에 빈조(빈藻 : 모든 水草로서 물속에 잠긴 풀을 빈, 물위에 뜬 것을 조라 하는데, 해내(海內 : 즉, 나라 안에 창생(蒼生)을 뜻함)가 의탁함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바라건데 귀산(龜算 : 거북의 산가지로 뽑아 헤아리는 수효)의 장수를 누리면서 이 크나큰 기업(基業)을 더욱 익찬(翼贊)하기를 바라거늘 어찌 저 영험한 하늘이 돕지 아니하여 돌연히 요상(夭상)하는 재앙을 내리시는가. 섬궁(蟾宮 : 달 속에 있는 궁전으로 세자빈의 궁을 말함)의 혼백이 떨어지니 학위(鶴위 : 학은 세자를 뜻하고 위는 궁궐 안)는 슬픔에 뒤얽혔도다. 요화(瑤華 : 奇華瑤草로서 귀여운 자식을 요옥과 같은 꽃에 비유한 것)가 떨어져 없어졌음을 생각하면 네 아름다운 음성이 여전히 귀에 남아 들리는구나.
정리로 보아서야 어찌 죽고 산 것에 간격이 있으랴. 예로 보아서는 마땅히 마지막을 보냄에 애통해하면서도 영전(靈典)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매 이에 판한성부사신 정 식(判漢城府事臣 鄭 軾)을 보내 너에게 시호를 증(贈)하여 장순(章順 : 온유하고 너그럽고 儀容이 아름다운 것을 章이라 하고, 柔順하고 어질고 자혜(慈惠)로운 것을 順이라 한다)이라 하노라.
오호라, 삶에는 끝이 있는 바이라. 네가 비록 살아서 백년의 낙(樂)은 누리지 못하였다하나 죽어서는 불후(不朽)로 쓰러지지 아니하고 바라건데 만세토록 상서를 드리울지어다. 너의 영령을 애도하는 나의 이 총명(寵命)을 부디 체득할진저.
비각(碑閣)내에 세워진 장순왕후(章順王后)의 비 전면에는 조선국(朝鮮國) 장순왕후공릉(章順王后恭陵)이라 전자(篆字)로 각자(刻字)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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