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혜왕후 (恭惠王后 : 1465~1474 15世)
공혜왕후는 성종대왕비(成宗大王妃)이다. 세조, 예종, 성종조(世祖, 睿宗, 成宗朝)의 영상(領相)을 지낸 충성공(忠成公) 명회(明澮)의 따님으로 예종대왕(睿宗大王)의 초비(初妃 : 章順王后)의 동생이다. 다음은 유사(遺事)로 소개하여 자세히 설명으로 삼는다.
 
성종대왕비  공혜왕후 유사(成宗大王妃 恭惠王后 遺事)
성종(成宗)은 두 왕후 십이후궁 일폐비(王后 十二後宮 一廢妃)를 거느리고 16男 12女를 두었다. 성종(成宗)의 원비(元妃)는 공혜왕후 청주 한씨(恭惠王后 淸州 韓氏)로서 영의정(領議政 上黨府院君 韓明澮)의 넷째 딸이다.
王后는 世祖 2年(檀紀 3789 · 西紀 1456) 10月 11日에 出生하였다. 世祖 13年(檀紀 3800 · 西紀 1467)1月 12日에 12歲로 한살 아래인 잘산군 혈(잘山君 혈)과 가례(嘉禮)를 올렸는데 2年 뒤인 睿宗 1年(檀紀 3802  西紀 1469) 11月 30日에  잘산군(잘山君)이 즉위(卽位)하자 王妃로 책봉(冊封)되었다. 그러나  成宗 5年(檀紀 3807 · 西紀 1474) 4月 15日에 소생없이 세상을 떠나니 향년 19歲였다. 공혜(恭惠)의 시호(諡號)가 올려지니 연산군(燕山君) 4年(단기 3831 서기 1498)에 휘의신숙(徽懿愼肅)의 휘호가 추상되었다.
신위(神位)는 종묘(宗廟)의 정전 제5실(正殿 第五室)에 배향(配享)되어 있으며 陵所는 坡州郡 條里面 奉日川里에 있는 순릉(順陵)이며 王后 홀로 안장(安葬)되어 있다.
 
공혜왕후 애책문(恭惠王后 哀冊文)(왕비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글)
유세차 성화 십년 갑오(維歲次 成化 10年 甲午 : 成宗 5年 檀紀 3807 · 西紀 1474) 4月 乙卯朔 15日 己巳에 대행왕대비께서 구현전(求賢殿)에서 훙(薨)하시어 다음 6月初 7日 庚申에 순릉(順陵)에 옮겨 모셨으니 이는 예에 맞는 것이옵니다.
신위(蜃衛 : 왕후의 嬪宮과 그 衛儀)가 밤새 베풀어졌다가 새벽에 예로(예輅 : 왕후를 태우는 수레)가 출발하기에 이르니 명정(銘旌)은 슬픈 바람에 아릿답고 단아하게 흔들리고 보삽(보삽 : 임금의 재궁을 싣는 대여. 운삽은 발인 때 상여의 앞뒤를 세우는  제구이며 보는 천자를 상징하는 도끼 등을 수 놓은 무늬를 뜻함)은 흰 달빛을 구비구비 비끼며 드높이 급요(급嶢)한 쌍궐(雙闕 : 대전과 곤전의 두 궁궐을 뜻함)을 등지고 그윽히 유울(幽鬱)한 중천(重泉 : 구천 즉 저승)으로 향하였습니다.
주상전하께서는 어진 보좌(補佐)에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비통해 하시고 유명(幽明)을 다르게  영구히 가로 막힌 것을 애도하시어 이에 사신(詞臣)에게 명하여 책(冊)을 지어  드러나게 하시니 그 말씀은 다음과 같사옵니다.
천지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매 만물이 모두 형통하고 음양이 번갈아  운행하매 세공(歲功)을 이루었듯이 왕후의 덕이 어진 데에서 王化가 비롯되었나니 夏나라는 도산(塗山 : 禹임금의 왕비인 塗山氏)에서 열렸고 주(周)나라는 위사(渭사 : 위수의 물가를 가르키는 말로 文王의 비인 태사(太사)가 이곳 신국(莘國사람임)에서 일어난 것이 그러한 것이었도다. 하늘이 성조(聖朝)를 도우시사 세세에 숙덕(淑德)이 있으니 저 넓은 淸原(지금의 淸州)에는 韓氏가 오직 큰 가문인데 대를 이어 미덕을 이루어 이에  석원(碩媛 : 훌륭하고 큰 여인)이 나시었도다.
잠저(潛邸 : 동궁을 거치지 않은 임금의 등극 전 사저)에 들어와 빈이 되어 오직 덕으로 행하여 내조가 많아 大命이 돌아감이 있었고 中宮에 올라서는 능히 호의(壺儀)를 정제하였도다.
비각(碑閣)내에 세워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비 전면에는 조선국(朝鮮國) 공혜왕후 순릉(恭惠王后 順陵)이라 전자(篆字)로 각자(刻字)되었다. 天子께서 아름다운 일이라 이르시며 총광(寵光)을 내리니 고명(誥命)이 이에 빛나고 곤룡포에 문채가 빛났도다.
아랫사람에게는 어짊이 미치고 의복을 빨아 입어 검박함을 밝혔으며 밤낮으로 재계하고 밝게 하여 공경히 종묘(宗廟)를 섬김에 사사롭게 편안함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고 그 예절을 쫓아 더욱 경건히 하였도다.
덕이 두터워 땅을 실을 만하고 도는 빛나서 하늘을 이을만하여 王化를 二南(詩經 : 의 편명인 周南과 召南)보다 더 융성하게 하고 모의(母儀)를 온 나라에 나타내어 장수를 누리고 多福할 줄 알았는데 이에 榮衛(血氣를 말함)가 잠깐 어그러져 필경에는 大漸(병이 위독해지는 것)이 다가와 홀연히 황지(皇祇 :  神을 말함)는 자리를 잃고 이어 월어(月御 : 月神을 말함)가 빛을 감추었도다.
오호라, 슬프도다. 아픔은 三宮(대전 · 중궁 또는 內朝 · 외조 · 治朝)에 사무치고 슬픔은 구중(九重 : 깊고 깊은 궁궐속)까지 얽혔으니 六宮(왕비에게 딸린 여섯 궁전)의 울음소리는 우뢰를 이루고 군신들의 눈물은 비가 되었도다. 아름다운 의범(儀範)을 우러나 어디로 갔는지 영모(영慕 : 어린아이 같이 사모함) 하나 따르지 못하니 슬퍼하노라.
 아아, 슬프도다. 어헌(魚軒 : 왕비가 타는 수레)은 이제 멍에 메지 못하게 되고 象服(귀한 부인의 예복)은 헛되이 설하여 있도다. 장렴(粧렴  : 화장에 쓰이는 경대 등속)에는 향기가 사라져 가려 하고 珩佩(허리에 차는 방울)에는 이미 소리가 끊겼는데 인산(因山)의 날짜가 정하여졌으니 비창하도다. 유역(유역 : 室內)이 엄연히 그대로 있으니 大行한 것같지 않건만 수만(수挽 : 장송의 만가와 관악 소리)이 합아여 울리니 목이 메이도다. 자욱한 눈시울이 냇가 수목을 가림으로 슬픔이 더하고 비운(悲雲)이 들을 덮으니 형색(形色)이 참담(慘憺)하도다.    아아, 슬프도다. 가성(佳城 : 산소)은 길지에 점쳐서 잡고 조역(兆域 : 묘역)은 신명을 따라 점쳤으니, 아아, 대수(大隧 : 땅을 파서 무덤으로 통하도록 만든 길)가 한 번 닫히면 깊은 밤에 새벽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아, 슬프도다. 천지가 있음으로부터 시작과 끝이 있지 않은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어진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장수하지 못하고 성인도 죽지 않은 이가 없도다. 오직 구천(俔天 :  주문왕비 태사를 기린 말로 천제의 누이에 비길 만한 여자)에 비길 만한 지극한 덕과, 해와 짝할 만한 아름다운 빛이 길이 백세토록 사라지지 않고 사책(史冊)에 씌여 꽃다운 이름이 유전(流傳)될 것이로다. 슬프고 또 슬프도다.
 

공혜왕후 시책문(번역문)(恭惠王后 諡冊文)

※註 : 왕이나 왕비의 시호를 올릴 때 생전의 공적을 칭송하기위하여 지은글
中正을 지켜 밟아 나가고 승순(承順)의 덕을 본받아 안에서 도운 공이 이미 융성하였으니 시호를 정하여 이름을 바꾸는 예를 마땅히 행하여 후세에 드러내야 할 것이므로 이에 옛날의 전장(典章)을 계고(稽考 : 지나간 일로 상고함)하여 이로써 아름다운 칭호를 더하는 바이로다.
아아, 그대 大行王妃 韓氏는 한결같이 단아(端雅)하고 성실하고 아름다우며 그윽한 넉넉함과  곧고 고요함을 갖춘 명문 탄육(誕毓)의 빼어난 규수로써  일찍 언월(偃月 : 이마에 나타나는 임금의 배필이 될 골상)의 자태를 이루어 과인의 잠저(潛邸 : 동궁을 거치지 않은 임금의 등극 전 사저)에 들어와 빈(嬪)이 되어 이미 구천(俱天 : 주문왕비 太사를 기린 말로 천제의 누이에 비길만한 여자)의 덕을 드러내더니 과인의 대통을 잇기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중궁의 위에 올라 王化를 二南(詩慶의 주남과 召南의 두 篇名 주남은 周나라 文王의 后妃가 修身齊家한 일을 노래한 것이고 소남은 南國의 諸侯가 후비의 德化를 입은 것을 읊은 것임)에 기틀잡게 하고 국모의 의표(儀表)를 한나라에 바르게 하였도다.
조심하고 부지런할 것을 염두에 두고 경계하고 깨우쳐 성취하는 것을 도왔으며 이제 바라건데 소생을 얻은 상서로움이 거기에 더하여 이로써 자손을 번연(蕃衍)케 하는 경사가 협화되기를 기대하였건만 저 맑은 하늘이 돕지 아니하니 크나큰 운수는 도피하기가 어려운지라 내 좋은 반려를 영구히 잃기에 이르렀으니 이제 누가 닭의 울음(왕비가 임금이 政事에 부지런히 內助하는 것을 말함. <毛詩>에 의하면 齊나라 哀公이 荒淫하자 賢妃가 새벽에 닭이 울고 동녘이 밝았으니 政廳에 나아가라고 勸告한 데에서 나온 것임)처럼 나를 깨워 경계하여 준단 말인가. 매양 좋은 보좌를 생각함에 어찌 내 거울을 잃은 슬픔을 이기리오.
이에 갖춘 의례를 받들어 아름다운 모범을 크게 드날리고자 이로써 영의정 신숙주(申叔舟)로 하여금 책문을 받들고 가서 공혜(恭惠)라 시호를 드리게 하니 영령(英靈)이 어둡지 아니 하거든  이 보명(寶命)을 가히 받들어 어여쁘고 또한 가지런하게 이 큰 칭호를 환혁(煥赫)히 드날리어 이로 하여금 번창하고 치성(熾盛)케 함으로서 밝은 상서를 붙들어 오래오래 이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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