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선종황제 공신부인(明 宣宗皇帝 恭愼夫人)
명나라(明 : 中國) 선종황제의 공신부인은 명나라 성조(成祖) 여비(麗妃)의 동생이요, 양절공 확(襄節公 確)의 여동생이다.
다음은 공신부인이 별세(別世)하니 헌종황제가 내린 제문(祭文)이다.
명 헌종황제사제문(번역문)(明 憲宗皇帝賜祭文(譯文))
제문(祭文)에 왈(曰) 『황제는 사설감 태감 왕거(司設監 太監 王据)를 보내 공신 부인 한씨에게 사제(賜祭)한다. 그대는 온유경신(溫柔敬愼)하여 아름답고 착함이 칭찬하기에 족하며 궁중에 일을 맡아 오랫동안 공로가 드러났고 수복(壽福)이 강녕(康寧)하여 마땅히 큰 복을 누릴 것인데 한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訃音을 듣고 슬퍼하고 탄식한다. 이에 특별히 공신부인을 추증하고 관원을 보내어 유제(諭祭)하며 인하여 유사에게 명하여 장사하게 하였다. 아아! 살아서는 어질고 착하였으며 죽어서는 영화로운 이름을 받았다. 인생이 이와 같으면 유감이 없을 것이니 그대는 흠향할지어다.』
 
명 선종황제공신부인묘표(번역문)(明 宣宗皇帝恭愼夫人墓表(譯文))
夫人의 성은 韓이요 휘(諱)는 계란(桂蘭)인데, 대대로 조선국 재상(宰相)의 집안이다. 考의 휘는 영정(永정)이요 비는 김씨인데 영락(永樂 : 명나라 成祖의 연호) 庚寅年(太宗 10年 檀紀 3743 · 西紀 1410) 4月 9日에 부인이 났다. 선덕(宣德 : 명나라 宣宗의 연호) 丁未年(世宗 9年 檀紀 3760 · 西紀 1427)에 國王 성휘(姓諱)가 내정(內庭)에 뽑아올려서 이제까지 57年이 되었는데, 四朝에 거쳐 섬겨서 시종(始終) 공경하고 삼가하기를 하루와 같이 하였다.
갑자기 병이 들자 황제가 좌우 사람을 보내어 보게 하고 또 내의(內醫)에게 명하여 치료하게 하였으나 효력이 없이 죽으니 때는 成化(명나라 憲宗의 연호) 癸卯年(成宗 14年 檀紀 3816 · 西紀 1483) 5月 18日이다.
황제가 듣고 슬퍼하며 애석해 하기를 여러번 하여 태감 왕거 (太監 王据)를 보내어 유제(諭祭)하고, 白金 백만과 채단 사표리(綵段 四表裏)를 하사하고 시호(諡號)를 공신(恭愼)으로 하여 지나간 행실을 밝게 드러내고 또 내관감 태감 손진(內官監 太監 孫振)에게 명하여 장역(葬域 : 葬地)을 경영하게 하고, 司設監 太監 王据, 내관감 태감 우적 · 곡청(牛迪 · 谷淸)에게 상사(喪事)를 총리(總理)하게 하였으니 皇太后 · 中宮 · 安喜宮 · 東宮이 모두 부의(賻儀)가 있었다.
장사는 이해 6月 21日에 하였는데 墓는 도성(都城) 서쪽 香山 언덕에 있다. 왕거(王据) 등이 조정의 사람과 은혜가 끝까지 이처럼 거듭함으로써 글이 없을 수 없다고 하여 묘 위의 돌에기록하여 큰 덕을 영구히 전하게  하여 이에 行狀을 갖추어 安(墓文을 지은 사람 萬安)에게 글을 쓰기를 부탁하기에 그동안 행장을 상고해 보니  夫人은 성품이 유순(柔順)하고 착하여 말을 망령되게 하지 아니하고 행동에 떳떳한 법이 있으며 내의(內儀)에 하나하나 능히 알고 기억하니 모든 집사(執事)가 함께 모사(姆師 : 여자 스승)로 높이 받들었다.
무릇 음례(陰禮 : 婦人의 禮儀 또는 婚姻의 禮)의 행사에는 반드시 나아가서 질의를 받으면 거의 틀림이 없었고 결루(結縷 : 실로 맺는 일)의 工에 반드시 지시를 구하였으니 여기에 정밀함이 지극하였다. 혹시 여러 조정의 내령(內令)을 잊음이 있어서 와서 밝히기를 청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고하기를 「이같음은 선묘(宣廟)의 令이고 이같음은 영묘(英廟)의 영이다.」라고 하니 이런 까닭에 빈어(嬪御 : 賓妾) 이하가 다 일컫기를 노로(老老)라고 하고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여러 조정에서 하사한 것은 다 기록 할 수 없고, 今上(憲宗)에 이르러 하사한 것은 전에 비하여 더욱 후하였는데 부인이 이따금 받으면 더욱 겸손하고 삼가하며 두려워하여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살아서는 황가(皇家 : 皇室)의 녹(祿)을 누리고 죽어서는 거듭 은혜의 내림을 입음이 마땅하다. 유제문(諭祭文)에 있기를 「온화하고 유순하며 공경하며 삼가서 아름답고 착함이 칭찬하기에 족하다.」고 하였고 고봉사(誥封詞)에는 「공경하고 부지런하며 삼가고 세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아니하였다」는 글귀의 표창이 있었으니 어찌 지나친 칭찬이겠는가? 부인은 어질도다! 옛을 상고하건데 先王의 덕과 교화의 성함이 안으로 규문(閨門)으로부터 四海 · 萬國에 이르니 비록 부인 · 여자라도 우리 조종(祖宗)의 교화의 융성함을 입지 아니함이 없어서 지난일과 더불어 나란히 하니 비유컨데, 봄 바람의 화한 기운과 같아서 가는 곳마다 빛이 난다.
부인은 해동(海東 : 朝鮮)에서부터 오래 금중(禁中 : 宮中)에 있으면서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배우고 익힘이 많아으므로 아름다운 행실과 능함이 있어서 같은 무리에게서 존중을 받고 조정에 알려져서 살아서와 죽어서 넓은 은혜와 큰 덕을 받음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묘표에 기록함이 이에 미치니 우리 조정의 교화가 널리 미친 것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이로써 표한다.

※註 : 성휘(姓諱) 국왕의 이름을 기록해야 하나 어휘인고로 기록치 않고 표시함.
이부상서 만안 찬(吏部尙書 萬安 撰)
※註 : 本墓 表文은 明나라에서 공신 부인이 별세 후에 산소(山所)를 쓰고 (墓表)에 글을 전해오는 대로 소개하여 훗일에 자료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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