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공 한여직(判書公 韓汝직 : 宣祖 8年~仁祖 16年(1638) 20世)
公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문신이다. 자는 중안(件安)이요 호는 십주(十洲)이다.
정익공 준(靖翼公 準)의 아들이며 돈녕부정 수경(敦寧副正 守慶)의 손자이고 이양공 명진(夷襄公 明진)의 6대손이다. 선조(宣祖) 37년(1604) 생원(生員)으로 유능참봉(裕陵參奉)에 처음 제수되었고 광해군(光海君) 2년(1610) 34세 때 명경갑과(明經甲科)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문학(文學) 등을 지내고 광해군의 난정(亂政)을 당하여 외직(外職)에 보임되어 재령현감(載寧縣監)을 지내고 품계(品階)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1613년 해주옥사에 연관되어 투옥되었고 석방된 뒤에는 10여년 동안 은거하였다.
인조(仁祖) 1년(1623) 인조반정(反正)이 일어나자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이어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고 다음 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도 관찰사로서 난을 평정하고 가의대부(嘉義大夫)가 되었다. 1628년 형조참판(形曹參判)으로 동지의금부도사(同知義禁府都事)를 겸하여 유효립(柳孝立)의 옥사(獄事)를 선치(善治)함으로 정2품에 올랐다. 이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좌참찬(左參贊),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예조, 형조, 공조의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인조 16년(1638) 9월 14일에 졸하니 10월에 계곡(桂谷) 선영(先瑩)하에 예장(禮葬)되었다.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으로서 우의정(右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 명필(名筆)이었다. 배위(配位) 정부인 능성 구씨(貞夫人 綾城 具氏)는 정랑 곤원(正郞 坤源)의 따님이며 아들은 사복정 혜(司僕正 혜)와 첨지 박(僉知 樸)이다.
배위 정부인 능성 구씨(配位 貞夫人 綾城 具氏)는 公과 합조(合兆)이다. 묘비는 현종(顯宗) 12년(1671) 2월 통훈대부 행 삼척부사(通訓大夫 行 三陟府使) 허 목(許 穆)이 짓고 전하다. 관악산(冠岳山)에 송덕비(頌德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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