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향록(철享錄)

 
송월당 한산두(松月堂 韓山斗 : 明宗 11年(1556) ~ 仁祖 5年(1627) 22世) 
 공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의 의인(義人)이다.  휘(諱)는 산두(山斗)이고 자(字)는 사첨(士瞻)이고 호(號)는 송월당(松月堂)이다.
 청암공 일취(淸巖公 日就)의 아들이고 부사공 기(府使公 琦)의 손자이며 이랑공 서봉(吏郞公 瑞鳳)의 9대손이다.
 공은 명종(明宗) 11년(1556)에 남계 부월동(南溪 浮月洞)에서 태어났다. 7세에 이르러 장자(長者)들이 운자(韻字)를 부르니 즉흥시(卽興詩)로 사람을 놀랍게 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이 창궐하더니 정묘재란(丁卯再亂)이 재발(再發)하여 국가가 위태한 지라 나라의 국록(國祿)을 먹던 이도 오직 피난만 하는데 공은 초야(草野)에서 성장하여 국가를 위하여 멀리 홍의장군 곽재우(紅衣將軍 郭再佑) 막하에 들어가 좌우로 협력하여 방비(防備)를 튼튼히 하였다.
 난리가 끝이 나지 아니하여 조정(朝廷)에서는 강화(講和)하자는 의논이 분분함에 공이 분개한 마음으로 만여언(萬餘言)의 상소(上疏)를 올리니 서산(西山)과 동해(東海)에 의설(義舌)이 날카롭도다.
 44세에 비로소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그 후 진취(進取)의 뜻을 버리고 소재(小齋)를 지어 송월당(松月堂)이라 하고 경사(經史)에 찬심(讚心)하니 명인달사(名人達士)가 이 문하(門下)에서 다출(多出)하였다.
 공은 인조(仁祖) 5년(1627) 3월 8일 72세로 졸하니 향인(鄕人)들이 후대(厚待)하여 노계서원(魯溪書院)에 배향(配享)하고 명(銘)하여 왈(曰) 우주(宇宙)에 감정(感情)을 빛내고 왕패(王覇)에 명분(名分)을 밝히도다. 성(城)을 등지고 의지(意志)를 뽑내고 의리(義理)를 듣고 몸을 날리도다. 백운(白雲)은 어찌하여 빨리 가는고. 추월(秋月)은 영원히 빛나리로다.
 배위(配位) 합천 이씨(陜川 李氏)는 충순위 윤복(忠順衛 潤福)의 따님이고 아들은 사마 원진(司馬 元進), 사마 형진(司馬 亨進)이다.
 공의 배위 합천 이씨(配位 陜川 李氏)는 졸함에 노좌리 면풍동 고 묘하(魯佐里 面風洞 考 墓下)에 합조(合兆)되었다.
 승지 두암 김약련(承旨 斗岩 金若鍊)이 묘갈(墓碣)을 찬(撰)하고 정조(正祖) 10년(1786) 사림(士林)에 의해 풍기 노계서원(豊基 魯溪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位置 : 慶尙北道 豊基 魯佐里 面風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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